개업한 지 며칠 안 된 식당 앞으로 긴 줄이 이어졌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지나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 풍경에 진저리를 치는 지인이 있다. 걸신들린 사람들만 사는 세상처럼 흉물스럽다나. 게다가 꼴불견이 연출되는 데에는 십중팔구 교묘한 장삿속이 개입된다고 그는 굳게 믿는 눈치다. 그에게 대놓고 반박하지 않지만 팔랑귀를 나풀거리는 나는 정반대다. 예컨대 제 돈 내고 무언가를 사먹는 사람들은 의외로 깐깐하다는 믿음이 나를 지탱한다. 한술 더 떠 어린 자녀나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나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그 식당에는 꼭 한번 들어가 먹어본다.

엊저녁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을 끝내고 친구를 꼬드겨 산책에 나섰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땅에 떨어진 오동나무 열매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고 동네 빵집도 구경하다 스르륵 그 식당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후 6시가 채 안 된 시간이라 대기자 명단에 딱 한 팀만 올라 있었다. “어? 오늘은 기다리는 사람이 별로 없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지나갈 때마다 긴 줄이 보이더라고.” 눈치 빠른 친구가 피식 웃으며 걸어가더니 대기자 목록에 자기 이름을 써넣고 돌아왔다. 이런 센스 꾸러기 같으니라고.

5분쯤 지나 자리를 배정받은 뒤 테이블에 깔린 밑반찬을 맛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신선한 재료야 음식 좀 한다는 가게의 기본이다. 사람을 꼬이게 하는 이 식당의 비기(秘技)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참깨와 참기름이었다. 소금 간을 한 콩나물무침에서도, 가을배추를 버무린 겉절이에서도 값싼 식용유가 섞여들지 않은 참기름 본연의 맛이 났다. 따로 시킨 꼬막무침도 마찬가지여서, 테이블에 놓인 참기름을 살짝 덧뿌려 밥에 비벼 먹으니 숨길 수 없는 신음과 함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주문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열려라 참깨.’ 보물을 가득 숨겨둔 도적 떼의 동굴 앞에 선 알리바바가 단단한 바위 문을 열기 위해 외웠던 마법의 주문. 당대에 가장 비싸게 거래되었을 황금이나 낙타도 아니고, 왜 하필 참깨였을까? 장구한 시간 동안 전 세계 뭇사람들 사이에서 무수한 희망의 메시지로도 변주되었던 이 주문을 두고 일부에서는 다른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처음 기록한 프랑스어의 ‘Sėsame, ouvre-toi’나 영어 ‘Open Sesame’에서 참깨라고 번역된 단어 세섬의 아랍어 심심(Simsim)이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문’이라는 의미로도 통용된다고. 그러니 아마도 알리바바는 “열려라, 대문!”이라 외쳤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가설이 어쩐지 심심하게만 여겨진다. 게다가 목숨을 담보로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분노와 복수의 화신이 된 샤리아르 왕 앞에서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야 했던 샤흐라자드가 아니던가. 그런 샤흐라자드의 운명을 떠올리자면, 알리바바의 모험이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을 일차원적으로 심심하게 묘사했을 리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마도 이야기의 화자는 쏟아지는 햇볕 아래 도톰하게 영글어 농익은 이후에야 단단했던 꼬투리를 툭! 하고 터뜨려 알알이 쏟아지는 참깨의 속성과 진한 향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터. 그 메타포가 알리바바의 모험과 만남으로써 이야기의 풍미가 훨씬 깊어졌다고 나는 믿어왔다.

마음먹고 시킨 전복해물탕까지 싹싹 비운 우리는 그 사이 불어난 대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서둘러 일어섰다. 못내 궁금했던 내가 계산을 하다 말고 주인에게 물었다. 이 집의 참기름, 의도한 거 맞느냐고. 낮고 작은 소리로 그가 답했다. “네.” 확신에 찬 저 은근한 눈빛이라니. 바위 문이 열리던 순간 알리바바의 표정이 딱 저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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