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맥밀러 월마트 CEO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 월마트 홈페이지

‘월마트 아마존 정글에서 사망’

세계은행 지식경영 디렉터를 지낸 스티브 데닝은 201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 이런 표현을 썼다. 그는 편의점처럼 편리하지도, 아마존처럼 저렴하지도 않은 월마트가 혁신을 이뤄내지 않으면 보더스나 서킷 시티 같은 유통업체들처럼 아마존 정글에서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존의 무서운 성장세 속에서 월마트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이는 비단 데닝 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월스트리트저널도 ‘유통업체들이 아마존 정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월마트 같은 유통업체가 매출 신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이 아마존은 2010년 매출이 전년 대비 40%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7년이 지난 지금 월마트는 보란 듯이 아마존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아마존의 가파른 성장세에 비해 월마트의 성장이 매우 더딘 것은 사실이나 아마존의 공세에 쓰러진 여타 업체들과 달리 세계 1위 유통업체(매출액 기준)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며 굳건히 버티고 있다. 월마트의 지난해(회계연도 기준 2017년 2월~2018년 1월) 매출액은 5,003억달러로 1,779억달러를 기록한 아마존(회계연도 기준 2017년 1~12월)의 2.8배 규모다. 게다가 아마존이 장악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월마트는 올 2분기에 전년 대비 3.8% 증가한 1,28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7% 감소하긴 했지만, 온라인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40% 가량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올 1분기 온라인 거래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33%였다. 월마트는 올 한해 온라인 거래액이 지난해 대비 40%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덕분에 올 1월 108달러까지 올랐다가 5월 82달러까지 곤두박질쳤던 주가도 지난 8월 중순 98달러까지 올랐다가 94~95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유통업계 최강자, 아마존 공세에 ‘성장 정체’

창업주 샘 월턴이 1962년 설립한 월마트는 미국 남부 아칸소주의 작은 잡화점에서 시작한 글로벌 유통 업체로 매출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이다. 월마트가 아칸소주를 넘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무렵인 1970년대 초 업계 최강자는 K마트였다. 후발주자였던 월마트가 1위 업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상품을 최저가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신속히 만족시키겠다는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샘 월턴 월마트 창업자. 월마트 홈페이지

월턴은 K마트와 경쟁을 피해 중소도시 외곽에 매장을 낸 뒤 최저가로 대결했다. 양질의 상품을 대량 구매해 대폭 할인한 가격으로 신속하게 매장으로 내보냈고, 상품이 물류센터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해 재고비용을 줄였다. 월마트는 철저한 물류시스템 및 재고관리로 K마트를 압도하며 1989년 매출액 기준 미국 최고 소매업체의 자리에 올랐다.

아마존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월마트는 적수가 없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유통 시장에서 온라인 비중이 점점 커지며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월마트가 급성장할 때 그랬던 것처럼 최저가ㆍ소비자 만족 최우선 정책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여기에 편리한 주문, 빠른 배송까지 더해져 월마트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월마트는 오프라인 사업에 치중하느라 시대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아직도 세계 1위 소매업체라는 위치가 무색할 만큼 온라인 분야 실적은 미미하다. 아마존이 미국 온라인 소매 시장의 절반에 가까운 49.1%(미국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 7월 발표 기준)를 점유하는 동안 월마트의 온라인 시장 점유율은 이베이(6.6%)와 애플(3.9%)에도 밀리며 3.7%에 그치고 있다.

월마트의 부진은 2000년대 들어 점점 심화했다. 2004년 연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더니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0.9%, 0.6%로 사실상 성장이 멈춰 섰고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월마트는 2010년 온라인 사업부를 오프라인과 분리하고 대대적인 혁신 작업에 들어갔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아마존의 눈부신 성장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이었다. 더그 맥밀런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2014년은 월마트가 전자상거래 후발주자로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시기였다. 맥밀런은 “이사회가 내게 원한 건 단지 회사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맥밀런, 월마트의 새 구원투수

창업자를 제외하면 월마트 사상 가장 젊은 나이인 47세에 회사 총 책임자가 된 맥밀런은 ‘알바 신화’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월마트의 고향인 아칸소주 벤턴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10대 시절 월마트 물류센터에서 트럭에 실린 짐을 내리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물론 시간제 비정규직 근로자로 출발해 CEO 자리까지 오른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뒤 월마트에 정식으로 입사해 여러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맥밀런은 월마트 CEO에 임명되기 전 월마트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마트인 샘스클럽 대표, 월마트 해외사업부 대표를 지냈다. 그의 지휘 아래 월마트의 해외 사업은 급성장했다. 2009년 15개국 3,300개였던 해외 매장은 4년 만인 2013년 26개국 6,300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해외사업 매출 증가율이 미국 내 매출 증가율을 추월하며 그룹 전체 매출의 29%까지 치솟았다.

CEO가 된 뒤 맥밀런은 온라인 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초기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방식의 옴니 채널 구축에 힘을 쓰다 방향을 바꿔 2016년부터는 인수ㆍ합병(M&A)으로 몸집을 불렸다.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제트, 의류 스타트업 모드클로스ㆍ보노보스, 가구 쇼핑몰 헤이니들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근로자를 착취하는 기업’이라는 부정적인 평판을 깨트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인 7.25달러보다 1.75달러 많은 9달러로 올린 뒤 단계적으로 11달러까지 인상했다. 탄소배출 감소 등 환경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 월마트 홈페이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한 덕에 2014년부터 3년간 4,700억~4,800억달러대에 멈춰 있던 매출액은 지난해 5,000억달러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2017년 1, 2분기 온라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0% 이상 오르며 월마트의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주가는 크게 출렁거렸다. 아마존의 저가 전략과 배송 서비스를 따라 하다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탓이었다. 그러나 아마존이 사업 초기 적자 누적에도 매출을 키우며 사업을 확장한 것처럼 맥밀런도 같은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는 “우리 목표는 따라 할 건 따라 하고 우리가 새로 만들어낼 건 만들어 내면서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며 “시대가 급변하면 전통적인 유통업체들은 살아남지 못했지만 우린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온라인으로 아마존 이길 것”

맥밀런은 온라인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며 2016년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월마트가 인수한 회사 중 최고가였는데 당시 제트닷컴은 창업한 지 2년밖에 안 된 신생회사였다. 맥밀런은 제트닷컴을 인수하는 동시에 제트닷컴의 창업자 마크 로어를 월마트 미국 온라인사업 부문 대표에 앉혔다.

로어는 2005년 전자상거래 업체 퀴드시를 설립해 자회사로 유아용품을 파는 다이아퍼스닷컴 등을 경영하다 아마존의 저가 공세에 밀려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매각 조건에 따라 아마존에서 임원으로 의무기간인 2년 반 동안 재직한 뒤 퇴사한 그는 2014년 제트닷컴을 세웠다. ‘아마존보다 저렴하게’를 내세우며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 연회비(99달러)의 절반 수준 연회비만 받고 상품 가격도 아마존보다 10~15% 쌌다.

맥밀런이 아마존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로어에게 월마트의 온라인 사업을 맡겼다는 건 아마존과 정면 승부 해보겠다는 의미였다. 마크 로어 영입 후 월마트는 구매액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연회비를 받지 않고도 무료 배송을 해주기로 했고, 온라인 매장의 인기 상품 가격을 대폭 할인해 아마존보다 저렴하게 팔았다. 아마존의 약점인 신선식품 배송도 강화했다. 구글과 제휴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음성인식 쇼핑 서비스를 시작했고, 미국 전역에 150만명이나 되는 직원이 퇴근길에 배송해주는 온ㆍ오프라인 연계 배송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맥밀런의 고민은 오프라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유통업체의 고민과 같다.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기 위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거대한 오프라인 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효율과 속도,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좀 더 싸고 편리하게 구매하길 원하지만, 실제 매장을 둘러 보며 사는 것도 좋아한다. 맥밀런은 그래서 아마존처럼 온라인 위주의 유통업체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업을 함께하는 회사가 이길 수밖에 없을 거라 믿는다.

“고객들은 쇼핑하는 데 있어서 비용과 시간을 최대한 아끼고 싶어 하고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제품을 원한다. 우리처럼 월마트 매장과 온라인몰, 디지털 기술을 모두 갖춘 회사라면 온라인 사업만 하는 회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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