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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이국종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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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이국종의 탄식

입력
2018.10.05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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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총상을 입은 북한군 귀순 병사 치료를 맡았던 당시의 이국종 교수. 중증외상센터를 통해 이 교수가 묻고 있는 것은 "사람의 목숨값은 평등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총상을 입은 북한군 귀순 병사 치료를 맡았던 당시의 이국종 교수. 중증외상센터를 통해 이 교수가 묻고 있는 것은 "사람의 목숨값은 평등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너무 많은 사람이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길에서 죽어나가고 이런 죽음의 기록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라는 허망한 숫자로만 표기될 뿐이다. 외상외과 환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들이고 정책의 스포트라이트는 없는 자들을 비추지 않는다.”

그래서 중증외상환자를 다루는 ‘이국종’이란 이름은 잊혀질 만하면 한번씩 ‘반짝’ 등장한다. 2011년 석해균 선장을, 지난해 ‘기생충’으로 각인된 북한군 귀순 병사 오청성을 살려냈을 때 같은 경우다. 그 외 그가 살려내는 사람은 대개 작업 현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 일용직 노동자, 택배기사, 외국인 노동자, 트럭기사, 어부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책은 “봄이 싫었다. 추위가 누그러지면 노동 현장에는 활기가 돌고 활기는 사고를 불러, 떨어지고 부딪혀 찢어지고 으깨진 몸들이 병원으로 실려왔다”로 시작한다.

죽음이라고 다 같은 죽음이 아니다. 계층화된 밥벌이 서열의 외곽에서 제 몸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이들에겐 함께 울어 줄 사람이 적다.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는 신문이나 TV는 암, 당뇨 같은 질병은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상세히 다루지만, 중산층의 관심사와 거리가 먼 사건사고는 그냥 저 멀리 어디 불운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일 뿐이다. 내다 팔 것이라곤 건강한 맨몸 하나가 전부였던 가장이 죽으면 유족만 아무 대책 없이 남는다. 그래서 환자를 살려내야만 한다는 절박함은 더해진다.

‘골든 아워 1ㆍ2’는 그래서 쓴 책이다. 2002년에서 2013년까지, 10여년에 걸친 기록이다. 중증외상센터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여기에 보면 2015년 기준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은 26.7%에 이른다는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10여년 전인 2007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대부분 15% 이하였고 확률을 한 자릿 수로 낮춘 지역도 많았다”고 써뒀다. 멀었다는 얘기다.

증증외상은 말 그대로 신체가 엄청난 외부 충격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는 의미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고 제자리에서 벗어난 장기들이 제 마음대로 굴러다닌다. 그렇기에 수술도 1차에 이어 2ㆍ3차 수술을 연이어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약도 초기에 집중 투여해야 한다. 일단 살려놓고 보는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기에 병원에서 환자 이송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의사가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야 한다.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환자가 발생하면 그 순간 비상이다. ‘센터’라는 조직 아래 의사만 10여명 남짓으로 구성된 팀이 헬기를 포함, 이동 중 충격과 진동도 이겨낼 수 있는 의료장비를 구비한 채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이유다. 이게 중증외상센터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골든 타임’이 아니라 1시간, 즉 ‘골든 아워’가 관건이다. 골든 타임은 광고비가 비싼 시간대를 말하는 광고 용어다. 첫 단추부터 글렀다. “몇 년 전 자문을 받으러 온 드라마 제작진에게 드라마 제목을 골든 아워라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제작진은 골든 타임을 고집했다.”

‘골든 아워’엔 헬기가 필수다. 그러나 병원 인근 주민, 사고현장 인근 주민들은 헬기 소음 민원을 낸다. 공무원들은 설득할 생각은 않고 민원 많으니 자제해달라고 한다. 헬기를 지원해주는 곳에선 ‘헬기가 이국종 개인택시냐’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1년에 300회 정도 출동하는데 그렇다. 미국, 영국, 일본에선 한 해 1,000여번 이상 출동해도 별말이 없다.

외상외과는 있으되 센터라는 조직이 없거나, 센터는 있어도 고작 4~5명 의사로 구성된 한 팀으로 24시간 비상체제를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야 한다. 의사, 간호사들이 병으로 쓰러진다. 저자도 어깨가 부서지고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가끔 피를 뒤집어써 가며 환자를 수술하고 나면 뒤늦게 환자가 AIDS 보균자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환자에 대한 사전검사라도 하려면 비용 문제에 걸린다.


 골든 아워 1ㆍ2 

 이국종 지음 

 흐름출판 발행ㆍ각권 438쪽,388쪽ㆍ각권 1만5,800원 

수술과 치료가 집중적으로 이뤄지지만 진료비는 일반 수술 환자 기준으로 지급된다. 돈이 없는 환자가 최첨단 의료기기가 동원된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열심히 일하면 적자는 커진다. 진료비라도 정상화하려고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 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백 번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9년 외상외과를 홀로 운영할 때 1년 적자는 8억원, 다음해 의사 1명이 합류했더니 8개월 만에 8억원 적자를 돌파했고, 의사가 더 합류하고 헬기를 쓰기 시작했더니 2012년에는 2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병원의 각 부처에서 사직 압력을 받던 골칫덩이였다.”

석해균 선장 사건으로 중증외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가 움직인다. 전국에 거점 센터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저자는 중증외상센터의 특성상 제대로 된 센터 몇 곳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소에 이국종을 ‘튀는 의사’ 취급하던 의료계가 치열한 유치전을 벌인다. 우리 지역에 중증외상환자가 넘쳐난다 주장하던 병원들은 정작 유치전이 끝나자 이번엔 ‘환자가 없어 센터가 놀고 있으니 센터 소속 의사들을 다른 진료에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저자의 결론 아닌 결론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면 그래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자부심과 무관한 탄식이다. 그래서 표지 사진이 인상적이다. 저자 얼굴, 응급실 수술, 헬기 출동 같은 게 아니라 수술 뒤 터덜터덜 되돌아가는 뒷모습이다. 갈수록 능수능란해지는 말과 표정에 수없이 기만당해 온 저자의 대답은 오직 하나, 묵묵한 등줄기다.

저자는 ‘칼의 노래’ 김훈의 문장을 빌려왔다 했다. 짙은 냉소와 허무가 감도는 김훈 문장에 대해선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가 명확히 갈린다. 이 책 또한 지나친 스타일리스트로 비춰질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국종이 부른 칼의 노래인 것은 분명하다. 없는 사람 목숨을 구해서, 같은 도덕적이고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다. 이 세상을 견뎌낸 기록이어서다. 견뎌낸 자들의 마음속엔 칼 한 자루쯤 있지 않던가. “저자가 이 사회에 자기 나름의 ‘유서’를 남긴다는 심정으로 쓴 책”이라는 게 출판사의 전언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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