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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판 나토’ ‘범이슬람 대테러동맹’… 중동 내 난립하는 군사동맹

입력
2018.10.05 19:00
수정
2018.10.07 12:0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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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2016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북쪽 지역에서 열린 ‘북부의 천둥’ 합동군사훈련 도중, 군인들이 공중 폭격 지점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훈련에는 사우디가 결성을 주도한 ‘범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에 참가한 21개국 군대가 참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28일 아랍에미레이트(UAE) 일간지 ‘더 내셔널’은 미 국무부 아랍걸프지역 담당 차관보인 팀 렌더킹과의 단독 인터뷰를 실었다. 그 즈음 렌더킹은 3주간 걸프 지역 ‘외교 투어’를 갖고, 내년 1월 출범을 예고한 ‘중동전략동맹(MESA)’ 관련 제반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MESA가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과 이집트, 요르단, 미국 등이 참여하는 ‘안보ㆍ경제ㆍ정치 동맹체’라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 7월28일 미국과 아랍권 국가의 익명 관료 4명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스타일의 아랍동맹군을 구상 중”이라고 전한 로이터통신 보도 내용은 더 이상 익명성이 필요 없는 계획으로 가시화됐다.

렌더킹은 인터뷰에서 MESA를 ‘(다자간) 안보경제 협력체’ 정도의 외교적 수사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란을 겨냥한 군사동맹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이른바 ‘아랍판 나토’ 창설 구상은 이미 지난 4월 초 존 볼턴 전 유엔 대사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연기를 피웠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24일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기자들에게 “이란이 (시리아에) 남아 있는 한 우리도 남는다”고 말했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같은 날 “미국이 시리아에 남는 건 오로지 이슬람국가(IS)가 패배할 때까지”라고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지난달 7일자 ‘밀리터리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시리아 특사 제임스 제프리 역시 “(미국은) IS가 대패할 때까지 (시리아에) 남을 것”이라면서 “올해 말까지 철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의 발언은 시리아 철수 조건과 관련해 강조점이 다르고 농도 차이도 있지만, ‘시리아에서 발을 빼지 않겠다’는 본질은 다를 게 없다. 미국은 ‘대 IS 전쟁’과 ‘이란 견제’를 내걸고 ‘아랍판 나토’ 결성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랍판 나토’의 선봉에 선 국가는 단연 사우디다. 사우디가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며 이란을 겨냥하는 방식. 이 3박자는 난립하는 중동 기반 군사동맹체들의 공통점이다. 사우디 주도의 군사동맹체는 이미 최소 두 개가 존재한다. 우선 2015년 4월 예멘전쟁에 개입하며 내전을 지역전으로 확대시킨 ‘아랍동맹(Arab Coalition)’이 있다. 다른 하나는 2015년 12월15일 ‘IS 격퇴’를 내걸고 사우디가 결성을 공표한 ‘범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이다. 사우디의 IMCTC 결성 공표 성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악한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부터 이슬람권 국가들을, 그들의 종파가 무엇이든 보호하는 건 (동맹의) 의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미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을 나누면서 군 장비 판매 차트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중동전략동맹(MESA), 이른바 ‘아랍판 나토’의 결성을 추진 중이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미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을 나누면서 군 장비 판매 차트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중동전략동맹(MESA), 이른바 ‘아랍판 나토’의 결성을 추진 중이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등 시아파 정부가 들어선 나라들은 IMCTC에 초대받지 못했다. 따라서 ‘종파가 무엇이든’이라는 문구는 무색하다. IMCTC가 ‘범이슬람 동맹’ 운운하지만 실은 이란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사우디는 또, IMCTC 결성 발표 시점에 명단에 올린 34개국 모두한테서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파키스탄 일간 ‘돈(Dawn)’은 2015년 12월24일자 보도에서 “사우디가 파키스탄 정부의 인지나 동의도 없이 군사동맹의 일부인 양 공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사우디는 예멘 군사작전에서도 파키스탄을 아랍동맹에 참여하는 것처럼 밝혔고, 아랍동맹 미디어센터에 파키스탄 국기까지 걸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결국 아랍동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재고 끝에 IMCTC에는 참여하고 있다. 나와즈 샤리프 당시 파키스탄 총리가 과거 망명생활(2000~2007년)을 했던 사우디와 친분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라는 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샤리프 전 총리는 2016년 3월 당시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라힐 샤리프와 함께 사우디 북부에서 IMCTC 동참국 중 21곳이 참여한 ‘북부의 천둥’ 합동군사훈련에 참관했다. ‘분석가’라는 직함을 달고 사실상 사우디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하면서 이란 핵에 맞서 사우디의 핵 개발 옹호론을 펴 온 퇴역장교 이브라힘 알 마리는 ‘북부의 천둥’ 훈련에 대해 “이란을 겨냥해 선명한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대테러’나 ‘대 IS 공동대응’ 같은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건 IMCTC의 결성 역시 이란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발언이다.

‘북부의 천둥’ 훈련 이후 라힐 샤리프 총장은 사우디로부터 “IMCTC 총사령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파키스탄 내에 크나큰 논란을 일으켰다. 파키스탄은 정권마다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전통적으로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취해 왔다. 자국의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종파적ㆍ패권적 성격이 드리운 군사동맹의 최고사령관에 오른다는 건 파키스탄에게 여러모로 탐탁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7월 25일 총선에서 승리한 ‘파키스탄정의운동(Pakistan Tehreek-i-Insaf, PTI)’ 정부의 시린 마자리 인권부 장관은 2016년부터 “IMCTC 참여는 파키스탄 내에 종파적 분열을 더욱 부추길 뿐 아니라, 지역 안정에도 크나큰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해 온 인물이다. 야당 시절 PTI는 당 차원에서도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논란은 PTI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크리켓 선수 출신인 임란 칸 총리가 취임 직후 첫 외교관 면담으로 택한 건 파키스탄 주재 이란 대사다. 그는 또 지난달 말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골랐다. PTI 정부가 이란과 파키스탄 양국 사이에서 어떤 수준의 등거리 외교를 보일지는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지난해 11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범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 회의에 참가한 41개국 정상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26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범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 회의에 참가한 41개국 정상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파키스탄처럼 최근 정권 교체와 함께 IMCTC 동맹이 외교관계의 변수가 된 나라는 더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다. 5월 총선에서 61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말레이시아는 더 확실한 태도를 표명하고 있다. 예컨대 신임 국방장관 모하마드 사부는 취임 직후, IMCTC의 한 참가국으로서 말레이시아군의 사우디 주둔을 재고하겠다면서 “(예멘전과 연관해) 사우디에 주둔 중인 말레이시아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며 어떤 세계 강대국의 정치적 이념과도 거리를 두겠다”는 게 그가 밝힌 철군 배경이다.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도 지난 1일 영국 싱크탱크인 차탐하우스(전 왕립국제문제연구소) 포럼에서 “군사동맹이란 걸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국가를 군사동맹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묶으면 말레이시아는 그들의 정치에 (본의 아니게) 관여하게 된다”고 했다. 마하티르 총리의 이런 발언은 그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사우디가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며, 이란을 겨냥하는’ 군사동맹의 실태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따지고 보면 ‘아랍판 나토’는 2015년 1월23일 사우디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보여 온 ‘공격적 패권 외교’의 한 방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동 내 군사동맹의 난립은 화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지역의 긴장과 무기경쟁, 종파들 간 패권 경쟁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러는 사이 아랍동맹은 예멘에서 인도주의적 위기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IMCTC의 ‘대테러전’ 활동이라는 것도 기껏 테러 비난 트윗을 날리는 게 전부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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