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국 年 80여개… 대다수 '도축 축제'에 가까워

주문진 오징어축제, 맨손잡기 늘리고 과학콘서트 취소
인공 부화된 함평 나비들 4월 추위에 일찍 죽어
[저작권 한국일보] 가을 행락철을 맞아 곳곳에서 열리는 동물 축제들은 대체로 관광객의 유희를 위해 동물의 희생을 이끌어내는 사실상 ‘도축 축제’에 가깝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이러한 목소리를 달래기 위해 과학 콘서트 등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늘리고, ‘맨손잡기’와 같은 행사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끝내 경제 논리에 밀려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5일 강릉시 주문진항에서 열린 오징어축제 맨손잡기 행사장에서 관광객들이 풀에 갇힌 오징어를 앞다퉈 잡고 있다. 강릉=신상순 선임기자

"맨손잡기가 메인 행사인데, 오징어도 만지면 아프다는 얘기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지역 생계가 달린 축제입니다. 그런데 누가 공연 보러 오징어축제에 옵니까."

강원 강릉시 주문진 오징어축제 개막(4일)을 불과 이틀 남겨둔 지난 2일. 축제 사무국 사무실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두 달 전부터 준비해온 ‘오징어 과학콘서트’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다. 축제가 시작되는 4일 밤에는 오징어가 얼마나 신비한 생명체인지 소개하는 과학콘서트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오징어 습성 가운데 "오징어도 만지면 고통을 느낀다"와 같은 콘서트 일부 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회의에서는 '맨손잡기'가 잘못된 행동으로 비쳐지는 메시지가 담긴다면 축제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관광수익을 제고하고 어민 생계 확보를 위해 매년 진행해온 오징어축제에서 맨손잡기는 자타공인 ‘하일라이트’ 행사다. 결국 주최 측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라며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19회째를 맞은 주문진오징어축제에서 오징어를 처음으로 먹거리가 아닌 교육의 대상으로 다루려던 이벤트는 그렇게 무산됐다.

당초 올해 축제는 과학콘서트, 가족뮤지컬 등 볼거리를 늘리는 대신 동물학대 논란이 이는 맨손잡기 행사를 크게 줄일 예정이었다. 이상준 축제 준비위원장은 "먹기, 잡기에 집중된 축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작은 생명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처음으로 교육 콘텐츠를 넣고, 맨손잡기 횟수는 절반으로 줄였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강릉시는 볼거리보다는 ‘관광객이 뭔가 얻어갈 프로그램’을 축제에 넣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수산물 판매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들은 “누가 축제에 공연 보러 오느냐”며 관광객 감소를 걱정했다. 주최 측도 예산을 지원하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지난해 절반(9회)으로 축소했던 맨손잡기는 16회로 다시 늘어났고 뒤이어 과학콘서트마저 취소됐다.

이 위원장은 “처음 변화를 시도하는 입장이라 결과에 대한 부담이 컸다"고 했다. 콘서트를 기획한 김산하(42)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오징어를 먹는 대상만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유희로 삼지는 말자는 것”이라며 "변화의 여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없었다"고 쓴맛을 삼켰다. 국내 첫 야생영장류 박사인 김씨는 동물행동학자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축제에서 동물을 주무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선진국이 돼가는 과정에서 너무나 후진적인 일”이라며 “더이상 ‘나는 모른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 게 아니라 부끄럽게 생각하고 변해야할 때”라고 했다.

외신들로부터 ‘신기하기 짝이 없는 행사’란 지탄을 받으면서도 행락철이면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동물 축제(연간 86개ㆍ2015년 기준)들. 산천어, 오징어, 송어를 좁은 공간으로 몰아넣어 재미로 잡도록 하는 천편일률 동물 축제를 바꾸려는 시도들은 이처럼 경제 논리에 부딪혀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생명을 오락물로 소비하는 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월 강원도 화천군에서 열린 산천어 축제에서 관광객들이 얼음낚시와 맨손잡기를 즐기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동물 축제 실상은 ‘도축 축제’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전국의 축제를 조사(2013~2015년)한 바에 따르면 동물을 테마로 한 축제는 86개이고 동물을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120개에 달했다. 동물을 이용하는 대다수의 축제에서 하일라이트는 ‘잡기’이고 최종 목적은 ‘먹기’였다. 프로그램의 84%가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고, 포획 활동의 97%는 결국 먹는 행위로 이어졌다. 가히 ‘도축(屠畜) 축제’로 불릴만한 수준이다. 천 교수는 “생태라는 이름을 걸고 벌어지는 행사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가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7월 김산하박사와 국제 비영리환경단체 시 셰퍼드(sea shepherd) 활동가인 김한민(39)씨 등은 서울에서 ‘제1회 동물의 사육제-동물축제 반대축제(일명 동축반축)’을 열고 이 같은 문제를 고발했다.

동축반축이 꼽은 가장 심각한 축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공한 지역축제로 꼽히는 화천 산천어축제(매년 1월)다. 축제 때마다 수만 명이 얼음 위에 올라 낚시를 하고 바로 옆에서 잡은 물고기를 굽고 회치는 광경이 펼쳐진다. 김 박사는 “엄청난 규모 때문에 CNN 선정 7대 겨울 불가사의에도 꼽혔는데, 비꼬는 의미가 내포된 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매년 축제를 위해 전국 30여군데 양식장에서 화천으로 산천어 수송작전이 이뤄지고, 얼음 밑에 방류된 물고기 76만여 마리에겐 입질이 좋게 하려 이틀간 먹이 공급마저 중단된다. 천 교수는 “맨손잡기는 자연상태에서 잡는 것처럼 관광객들에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양식어를 제한된 공간에 가두고 잡는 행위”라며 “잡기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고, 동물들에게 너무나 불공정한 게임일 뿐”이라고 했다.

화천산천어축제 전경. 낚시터 바로 옆에서 회와 구이 시설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생태축제로 이름난 함평나비축제(매년 4월 말)의 실상도 마찬가지다. 축제에 등장하는 나비 20여만 마리는 인공적으로 부화해 방사한 것들이다. 축제가 열리는 4~5월은 나비를 방사하기에는 너무 일러 추워 죽는 경우가 많아 방사 행사에서조차 살아있는 나비 구경이 쉽지 않다. 실내에 살아남은 나비도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보다 일찍 죽는다. 천 교수는 “생태축제를 표방하는 많은 축제들이 실제로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키운 동물을 대거 가져다 풀고, 결국 단체로 죽이는 수순”이라며 “이런 축제를 생태축제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무주반딧불이축제, 서천철새축제 등은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생물학적인 정보를 스토리텔링해 모범적인 축제로 꼽힌다.

김한민씨는 울산고래축제(매년 7월)에도 고래의 생태와 보존에 관련된 콘텐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래의 생태만 가지고도 할 얘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래는 똥을 싸는 행위만으로도 생태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원래 바다 속은 위는 따뜻하고 아래는 차가워 순환이 잘 안 되는데, 심해에서 배변된 고래의 똥이 위로 떠오르면서 무거운 질소를 운반해 플랑크톤에게 먹이를 공급합니다. 이것 말고도 고래가 익사 위기의 인간을 도와준 사례, 큰 배가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연도 있죠. 이런 걸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 진정한 고래축제의 역할 아닐까요.”

[저작권 한국일보] 광역단체별 동물 축제와 활동유형에 따른 분류=그래픽 신동준 기자

◇포유류만 고통? “낙지, 문어, 새우도 마찬가지”

동물을 괴롭히는 동물 축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처럼 동물 복지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는 현상은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70년대 동물권 운동의 창시자인 호주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 느낄 수 있는 존재이므로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라며 “동물도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개나 고래, 참새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으며 이제는 어류까지 인정하는 추세다. 20여년간 치열했던 물고기의 고통에 대한 연구는 2016년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책이 나오며 일단락됐고, 세계 최대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도 ‘물고기는 고통을 느낀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최재천 교수는 “8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 수의과대학에서는 ‘동물 수술에는 마취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며 “과학자들이 동물의 고통을 인정하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척추동물뿐 아니라 갑각류와 낙지 등 두족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스위스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삶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배경에는 ‘동물도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원래 동물권 상황은 인본주의가 뿌리깊은 서양이 훨씬 나빴지만, 점차 동물의 고통을 꺼리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주류문화가 됐습니다.” 김 박사는 도살 과정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도적 도살법’ 연구만 지원하는 기금도 있다고 설명했다. 포유류는 물론이고 어류도 연구대상에 포함된다. “한국은 아직 ‘먹는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관점이 팽배하죠. 동물을 산 채로 껍질 벗기고, 끓는 냄비에 넣어 뚜껑을 탕탕 치고 올라오는 광경은 외국인 사이에선 ‘믿거나말거나’로 회자되는 실정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자바긴팔원숭이 연구로 국내 첫 야생영장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김산하의 야생학교'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생명과 자연을 소중히 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동물의 고통 연구 이전부터 철학자들은 ‘인간을 위해 동물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생명 존중 차원에서 동물에 대한 잔혹행위를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분석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아이에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동물을 학대하다 보면 결국 인간 사이에서 잔혹함이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퓨마사살, 관리소홀 책임 엄격히 물어야

동물을 이용하는 축제 외에도 동물은 일상적으로 인간의 오락과 유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물원, 야생동물카페, 동물관광상품 등은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여가활동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지난달 대전 오월드에서 퓨마가 사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동물보호활동가뿐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도 동물원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인간의 관리소홀로 우리를 빠져나간 동물을 사살한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비난도 들끓었다. 김 박사는 “생포 여지가 있는데도 사살은 정당화하고 근본원인(관리소홀)에 대한 처벌은 약한 것은 문제를 외려 감싸는 것”이라며 “적절한 생포법 등 야생동물 수의학에 투자하고, 관리 책임도 엄격히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열악한 사육시설 보완과 운영방식 개선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맹수에게도 지나치게 좁은 사육장이 제공되고, 만지기, 먹이주기 체험에 동원된 토끼, 너구리들은 스트레스와 장염 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대전 오월드 입구에 사살된 퓨마 뽀롱이를 추모하는 조화와 메모들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실내 카페에서 너구리, 도마뱀 등 야생동물을 접촉할 수 있는 야생동물카페는 이색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며 서울 홍대 거리 등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동물학대의 온상’이라는 비난 여론 속에 지난 8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일명 ‘라쿤카페 금지법’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좁은 실내에서 운영되는 야생동물카페는 적절한 사육환경 제공이 불가능하고, 인간과의 과도한 접촉으로 인수공통전염병 전파 등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동물관광 분야에서는 ‘대상’만 생태가 아니라 ‘방법’조차 생태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동물에게 가하는 침해의 수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갈라파고스제도나 영화 ‘킹콩’의 실제 모델인 르완다 마운틴 고릴라 투어 등은 관찰 위주임에도 인원 제한이 엄격하다. 김 박사는 동물관광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관광객의 존재 덕분에 동물은 밀렵당할 위험이 낮아지고, 생태과학연구 덕분에 관광객은 동물을 제대로 관찰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과학과 관광이 윤리적인 근간 위에서 잘 만난다면 윈윈할 수 있습니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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