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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의 어두운 과거

입력
2018.09.30 10:15
수정
2018.11.08 16: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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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사건과 관련하여 전 삼성전자 임원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노무 담당 임직원 등 28명과 2개 법인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그 발표문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노조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그룹 미래전략실이 주도하여 노조 와해 공작을 총괄 기획하고,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는 구체적인 전략을 조직적으로 실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작성된 노사전략 문건에는 “노조가 생기고 나면 와해시키기 어렵고,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만큼 사전예방만이 최선”이라고 밝히고, 노조 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로 비유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한 결과는 참혹했다. ‘노무 관리’라는 명목으로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노조 와해 공작으로 인해 조합원 2명이 자살에까지 이르렀고, 실업과 낮은 수준의 임금 인상 등 조합원들이 입은 정신적ㆍ경제적 피해는 막대했다.

이를 통해 삼성 그룹이 조합원과 구성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적어도 삼성에서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행동이고, 그런 마음을 갖는 건 정서적 결함과 같은 나쁜 심성에 기초한 것이며,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얻을 건 없고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설 때 충분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룹의 노조 와해 공작은 법이 보호하며(적당한 이유를 대면 단체교섭을 미룰 수 있다), 정부도 그룹의 주장을 신뢰하고 지지하므로(노동조합의 수사 요청은 자주 무시된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한다’란 법 규정은 무기력한 구호에 불과하다(헌법에도 불구하고 그룹 창업주의 경영 방침이 우선한다)는 현실이었다.

세계적 기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자리잡고 그 구성원들에게 위와 같은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을 단지 삼성 그룹의 책임으로만 돌릴 순 없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한국 사회를 지배했고, 많은 관료와 전문가들은 시장근본주의적 사고에 매료되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재(再)상품화를 추구하고 그 수단을 정당화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용의 유연성과 노동조합의 약한 교섭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권을 위한 법규범은 시장에 거추장스러운 존재로서 사라지거나 시장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순화되어야 하는 것에 불과했다. 헌법이 모든 근로자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함에도, 삼성그룹이 공적 조직을 통해 구성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 무렵 한국 사회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용인하고 방조하였기 때문이다. 중앙지검의 발표문에 나오는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확인하지 못했던 진실’이란 문구는 이런 우리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한양대 강성태 교수는 시장이 법을 가벼이 보는 순간, 재벌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포식자가 생겨나고 그 뒤를 이어 먹이사슬의 다음 자리를 차지하려는 중간 포식자들이 생겨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시장이 끝없는 탐욕이 판치는 “신종 레비아탄(nouveau Leviathan)”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시장이 돈의 자유와 권리를 앞세워 법 원칙을 함부로 훼손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강성태, ‘노동에서의 정상’, <새로운 사회경제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정책> 세미나, 한국노동연구원, 2012).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사건은 시장에서 규범이 사라지고 탐욕이 제어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불행한 사례이다. 따라서 이를 한 기업의 범죄 행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가 시장과 기업에서도 작동되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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