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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정부 정책으로 서울 입성 문 닫혔다?

입력
2018.09.29 04:40
수정
2018.09.2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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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이 서울 젊은이를 집값이 싼 경기도로 내몰고 있다.”

최근 주택대출 규제 강화의 부작용을 다룬 본보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 중 하나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불평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전방위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의 취지엔 대체로 찬성하지만, 정부가 명분에 사로잡혀 실수요자와 투기세력을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돈줄을 죄면서 정작 내집 마련이 급한 무주택자들의 매수 기회까지 박탈됐다는 겁니다.

대출 규제가 집중된 서울에 사는 무주택자라면 이런 불평을 충분히 쏟아낼 수 있습니다. 정부가 투기세력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대출 규제만 잇따라 강화했을 뿐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집값을 떨어뜨릴 테니 그때 사면 된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 기조였건만, 이와 반대로 집값은 집값대로 뛰고 대출 규제로 돈줄까지 막히면서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어졌다는 푸념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6ㆍ19 대책을 필두로 잇따라 부동산 시장 규제 정책을 내놓으며 대출 문턱을 높여 왔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들썩이는 집값을 잡고 동시에 임계치를 넘어선 가계빚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였죠. 6ㆍ19 대책 땐 서울과 경기, 부산 일부, 세종 등 40곳을 청약조정대상 지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집을 살 때 적용하는 대출한도를 기존 집값의 70%에서 60%로 10%포인트 줄였습니다. 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곧바로 8ㆍ2 대책을 내놓고 서울 전 지역과 세종, 경기 과천ㆍ분당ㆍ광명ㆍ하남시, 대구 수성구를 투기지역으로 묶어 대출한도를 기존 집값의 60%에서 40%로 줄였습니다.

◇3명 중 1명 대출한도 감소

이에 따른 정책 파장은 상당한 걸로 추정됩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새로 바뀐 대출규제 영향을 시뮬레이션(지난해 10월 발표) 했더니 정부의 부동산 및 가계부채 규제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수요자 3명 중 1명은 대출한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분석 결과를 보면 8ㆍ2대책 시행으로 신규 주택대출 수요자 32.9%의 대출가능금액이 평균 22.8%(1인당 2,980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앞서 청약조정대상 지역에 한해 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비율을 각각 10%포인트 낮추도록 한 6ㆍ19대책은 신규 대출자 11.4%의 대출한도를 기존보다 17.9%(3,362만원)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들 대책의 누적효과를 감안하면 실수요자들의 체감도는 상당했을 걸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이들 대책이 주택 유무를 가리지 않고 일괄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내집 마련이 급한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 왕왕 발생합니다. 서울에 사는 무주택자의 경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출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는데 대출한도가 확 줄어 더는 그 집을 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물론 집값의 40%(서울 무주택자 기준)를 빌려주는 것도 과도한데 그 이상 대출을 내주는 게 맞느냐고 지적할 수 있지만, 금감원의 분석 자료(8ㆍ2 대책 영향 분석, 국민은행 고객 10만8,000명 대상)를 보면 8ㆍ2 대책 이전 LTV 40%를 초과해 대출 받은 이가 전체의 81%에 달합니다. 대다수가 대출에 기대 내집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인데, 무주택자까지 싸잡아 대출한도를 일괄적으로 내리는 게 옳은지 한 번 따져볼 필요는 있는 셈입니다.

◇현실과 안 맞는 서민 실수요 기준

무주택자들의 또다른 불만은 정부가 정한 서민 실수요자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겁니다. 정부는 8ㆍ2 대책 등을 발표하면서 무주택 서민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서민 실수요자’ 기준에 해당하면 완화된 대출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생애 최초 내집 마련 시, 그 외엔 6,000만원)이면서 사려는 집이 5억원 이하면 대출한도를 기존 집값의 40%(투기지역 기준)에서 집값의 50%까지 늘려주겠다고 한 거죠. 하지만 주택가격 수준은 1년새 확 뛰었습니다. 서울만 놓고 보면 8ㆍ2 대책이 나온 지난해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집값이 20% 넘게 뛰면서 5억원 미만 아파트 비율이 50%에서 39%로 내려간 겁니다.

정부가 정한 서민 실수요 기준은 정책 주택대출 상품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정책대출의 가장 큰 장점은 강화된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상품별 기준에만 부합하면 서울과 같은 투기지역에서도 70%까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서울에선 요긴하게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보금자리론은 대출한도가 3억원으로 가장 많긴 하지만 5억원 아래 집까지만 완화된 규정을 적용해 줍니다.

하나 더 볼까요. 디딤돌대출은 금리가 연 2%대로 저렴해 정부가 열심히 홍보하는 상품입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미혼 세대주에게 이 상품은 그림의 떡입니다. 무주택 부부는 집값 5억원 이하 주택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미혼 단독세대주(만 30세 이상)는 대상 범위가 3억원 이하 주택으로 제한되는 탓입니다. 대출한도 역시 미혼 단독세대주는 1억5,000만원(부부엔 2억원)에 불과합니다. 이렇다 보니 서울 아파트 10채 중 8채가 5억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디딤돌대출은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조차 “서울에선 빌라 구입용으로 적당하다”고 말합니다.

2012년 나온 공유형모기지의 경우 금리 조건(연 1.5~2%)은 좋지만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한 데다 집값 상승에 따른 차익을 정부와 나눠야 하는 구조 탓에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경제 상황이 바뀌면 정책 대출 역시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데, 애초 설계된 그대로다 보니 수요자들의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주택도시기금 관계자는 공유형 모기지 이용자 수를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실적 자료를 따로 내지 않는다”며 답을 피했습니다.

◇결국 경기 외곽이 대안인가

서울에 사는 이들은 결국 대출 규제가 미치지 않는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선 대출한도도 낮고 집값까지 뛰어 집을 살 엄두를 낼 수 없으니 대안이 될 만한 곳은 그나마 집값도 덜 뛰고 대출도 최대 70%까지 받을 수 있는 경기 외곽지역 밖에 남지 않는 겁니다. 이들 입장에선 정부 정책의 선의를 믿는다고 해도 “도대체 왜 서울 사는 무주택자까지 피해를 봐야 하냐”는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들에겐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도 와닿지 않습니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인근 지역 주민들이 벌써부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서울 집값 잡겠다고 다른 지역 집값을 내리자는 거냐는 비판이죠. 과거 사례를 보면 이는 당연해 보입니다. 길게 갈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 시절 행복주택은 인근 주민의 반발로 실제 조성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또 아파트’로 불렸던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정부의 토지 수용 등에 시간이 걸리면서 분양 당첨자가 입주하기까지 7년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장기 프로젝트를 내세워 무주택자들에게 마냥 기다려 보라고 시그널을 주는 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무작정 대출 규제를 강화하기보단 사정이 되는 실수요자는 집을 살 수 있게 대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게 와닿는 정책일 수 있지 않을까요.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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