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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짧아... 어서 읽어, 달달한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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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짧아... 어서 읽어, 달달한 연애소설

입력
2018.09.28 04:40
수정
2018.09.28 16: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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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대표 4인이 추천하는 연애소설=그래픽 신동준 기자
출판사 대표 4인이 추천하는 연애소설=그래픽 신동준 기자

추석이 지나니 가을이 깊어진다. 가슴 적시는 연애소설 하나쯤 읽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남녀상열지사야 전 인류의 관심사라, 사랑 타령 없는 소설을 찾는 게 더 힘들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싶어지는 이유다. 오랜 시간 책을 매만지며 글로 현현한 사랑의 감정을 누구보다 많이 접했을 출판사 대표들에게 물었다. 어떤 연애소설을 추천하고 싶냐고. 사랑에는 이제 무뎌질 만도 한 연배, 그래도 옛사랑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아려올 만도 한, 냉정과 열정 사이에 놓인 이들이 권하는 연애소설을 소개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ㆍ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격정적인 사랑의 끝장판”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 그리고 윌리엄 트레버의 ‘비온 뒤’를 꼽았다.

아무래도 수상쩍다. 지나치게 요즘 취향이다. 곧 자백했다. 사실, 당혹스러워 젊은 여성 편집자들에게 의견을 구했노라고. 세상은 이렇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할 뻔 했던, 한 때 수백 편의 시를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 열정적이었던 문학도는, 이제 연애소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출판사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꼽은 것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격정적 사랑과 증오를 다루잖아요. 너무너무 강렬한 이야기라서 등장 인물들이 바보처럼 행동하거나 비극적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아니 도대체 왜!’라고 절규하면서 책을 벽에 집어 던질 정도로 몰입한 채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한 권의 책은 남녀간의 밀당 묘사 못지 않게 예술과의 사랑을 멋지게 그려낸 이외수 작가의 ‘들개’였다. 이 또한 왕년의 시인 지망생다운 선택이다. “한창 시 쓸 무렵 한 선배가 술 마시고 쓰니까 무려 26편이 써졌다는 거예요. 나도 해보자 했더니 고작 6편이 써지더라고요. 그마저도 술 깨고 보니까 6편이 다 똑같은 시였어요.” 남다른 사랑을 꿈꾸는 연애소설의 결말도 늘 그랬는지도 모른다.

◇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간 보기 없는 유쾌한 짝사랑”

추천한 사람과 추천한 소설 주인공이 어쩐지 닮았다. 정은숙 대표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검은 머리 아가씨.

소설은 대학 신입생인 ‘아가씨’가 하룻밤에 사계절을 보내며 인생을 맛보는 판타지다. 아가씨는 천진난만한 긍정의 화신이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걷는다. 봄의 술거리에서 당나라 시인 이백과 술 대작을 벌여 씩씩하게 이긴다. 여름엔 헌책 시장을 구경하고 가을엔 대학 축제를 즐긴다.

‘연애’는 대체 어디에…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선배’가 있다. 사계절 내내 아가씨를 따라다닌다. 스토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끈적거리지 않을 정도로만 애틋하다. 둘은 책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갖고 싶어하는 책을 구해 준 선배의 마음을 아가씨가 뒤늦게 알아채고 마음을 연다. 끝까지 풋풋하고 상큼하다.

정 대표가 꼽은 이 연애소설의 미덕. “밀당도, 간 보기도 없다. 사랑의 기술이라고 해도, 피곤하니까(웃음). 짝사랑이되 가슴 아프지 않다. 농밀한 사랑의 언어는 없지만, 은유로 더 많은 걸 말한다. 연애가 인생에 녹아 있다는 설정도 좋다. 사랑 따로 인생 따로가 아니다. 불꽃 같은 연애도 결국 인생과 연결돼 있다. 연애는 인간관계의 엑기스, 액즙이다. 잘 쓴 연애소설은 그걸 보여 준다.”

◇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속만 태우다 끝나서 더 아련”

일생의 사랑소설로는 오영수 선생의 ‘수련’이 떠오른다. 오 선생은 민중미술 판화가로 작고하신 오윤 선생의 부친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빼어난 단편을 많이 썼는데, 일본 사소설 같다는 비판도 꽤 있었다. 예전 연애소설은 남녀상열지사 같은 것은 잘 안 나오고 애틋한 남녀의 마음이 변죽만 울리다가 끝나는 스토리가 많았다. 그 과정이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수련’은 낚시터에서 만난 남녀가 한 계절을 서로 속만 태우다 끝나는 이야기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이 지금까지도 기억난다. 낮에는 피었다 밤에는 지는 ‘수련’이 핵심적 상징인데, 하여튼 읽어볼 만하다.

또 다른 연애소설이라면 윤후명의 ‘협궤열차’가 떠오른다. ‘돈황의 사랑’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협궤열차’는 옛 사랑과의 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쓸쓸하고도 아름답게 담아서 진정한 사랑 소설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사라진 수원-인천간 협궤 열차노선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윤 선생은 문체주의자로 뭇 청년과 여성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던 대단히 탐미적인 작가. 모든 작품에 쓸쓸함과 몽환과 그리움과 추억이 잘 배어 있는, 진정 ‘고상한 바람꾼’이 쓴 듯한 느낌이 든다.

◇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담백해서 더 여운이 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골랐다. 이사카 고타로가 쓴 유일한 연애소설이다. “오글거리는 걸 영 못 보는” 김홍민 대표가 감탄하며 읽었단다.

연작 소설의 한 편. 한 남자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짝사랑을 고백하려 한다. 그런데 그날 밤 열리는 권투 경기 결과를 보고 고백할지를 정하겠다고 한다. 주인공인 여자가 보기엔 너무나 한심한 일. 미용사인 여자는 손님에게 남자를 소개받는다. 둘은 오래도록 전화 데이트만 한다. 남자는 나타났다 사라지기 일쑤인 그런 남자다. 어느 날 남자의 전갈. ‘TV로 중계되는 권투 경기에서 일본 선수가 이기면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 여자는 화가 난다. 화는 간절함으로 바뀐다. 여자의 바람 대로, 일본 선수가 이긴다. 여자는 전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반전. TV 속 그 선수가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말한다. 사랑한다고.

김 대표의 추천사. “소설 러브신을 잘 못 본다. 그런 묘사를 잘하는 작가도 사실 많지 않고(웃음). 이 소설은 다르다. 기교 없이 담백하다. 영리하게 썼다. 그래서 여운이 더 많이 남는다.” 기름기가 죄악인 시대라지만, 연애소설까지 담백해야 하나. “담백한 연애소설을 읽고 담백한 연애를 하시라. 연애에 판타지를 품는 건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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