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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출산주도성장, 차라리 패러디였다면···

입력
2018.09.27 18:41
수정
2018.09.27 21: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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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패러디로 알았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이야기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을 김 원내대표가 패러디하기 위해 출산주도성장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알았다. “돈만 손에 쥐여 줘도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는다면, 저출산 문제도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뿌려서 한번 해결해 봐라, 어차피 안되겠지만···” 이런 내용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패러디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설마 하면서 원내대표 연설문 원문을 찾아 읽어보니 저출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서 해결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다. 획기적 정책 대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출생아 1인당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주자고 한다.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매달 약 33만원씩, 1년에 모두 400만원 지원금을 더 지급한다. 그러면 8,000만원이 된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에 지원금 8,000만원을 합하니 1억원이 된다. 1년 출생아 수를 40만명으로 전제할 경우 출산장려금 1년 예산이 8조원이다. 지원금 내지 연간수당은 1조6,000억원이 된다. 일시불로서 출산장려금에 비해 지원금ㆍ연간수당은 출생아 수 증가에 따라 매년 누적해서 지급한다. 그래서 20년 뒤에는 매년 32조원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은? 아동수당을 위시한 가족정책 지출예산을 통합ㆍ운영해서 연평균 18조원을 조달할 수 있단다.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 계획을 취소하면 향후 330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도 한다.

월 10만원 보편적 아동수당을 선별적으로 하자고 반대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주자는 이렇게 엄청난 태도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재원 조달 방안의 구체성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진짜 궁금한 점이 있다. 혁신위원회 체제라는 자유한국당 내 분위기가 현금을 투입하여 출산 주체로서 여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저출산 현상이 내 손에 쥔 현금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인가? 돌봄ㆍ교육 비용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속적으로 어린이집ㆍ유치원 비용 부담을 낮춰 주고 일정 연령까지 아동 의료비를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 100% 확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학교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의무ㆍ무상교육을 실현하면 된다. ‘혁신’의 방법을 조금만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왜 현금을 손에 쥐여 주면 아이를 낳게 된다는 발상만 했을까?

인적ㆍ물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던 과거의 산업사회 개발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올드보이식 사고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족계획율 목표를 정해 놓고 낙태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서 인구성장률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출산 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를 낳은 가족이 유모차를 끌고 편안하게 산책하면서 남의 눈치 안보고 식당에 가서 편안하게 밥도 먹을 수 있는 지역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 울음소리 듣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독박육아, 경력단절, 성별 임금격차’ 구조가 있다. 여성들이 출산을 망설이고 기피하는 이유다. 현금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김 원내대표의 제안에 여성들은 이런 답을 할 것이다. “내가 아이 낳는 자판기냐, 돈 넣으면 아이 나오는?”

차라리 패러디면 좋았을 뻔했다. 대한민국 사회구조를 그야말로 혁신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 현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변화를 위한 관련 법안의 통과를 손안에 쥐고 있는 거대 야당 원내대표가 현금의 문제로 치환하는 현실을 보니 좌절만 앞선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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