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수후미 학살(9.27)

입력
2018.09.27 04:40
30면
0 0
압하지야 분리파들에 의한 수후미 그루지아인 학살사건이 1993년 오늘 일어났다. 사진은 그렇게 독립한 압하지야공화국 시민들의 독립 축하 행사 장면. 위키피디아
압하지야 분리파들에 의한 수후미 그루지아인 학살사건이 1993년 오늘 일어났다. 사진은 그렇게 독립한 압하지야공화국 시민들의 독립 축하 행사 장면. 위키피디아

‘대표 없는 국가ㆍ민족 기구(UNPO, Unpresented Nations and People Organization)’란 국제사회가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ㆍ민족 구성체들이 1991년 결성한 대안 국제기구로, 2018년 현재 43개 회원 국가ㆍ민족이 가입돼 있다. 그들은 유엔 등 국제기구의 인정을 못 받아 대표를 파견하지 못하고, 당연히 환경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발언권도 없다. 자연재해 등 유사시 원조나 재난 구제, 분쟁 중재 등의 지원도 공식적으로는 받지 못한다. 중국 지배 하의 티베트, 유엔에서 쫓겨난 대만처럼 잘 알려진 예도 있지만, 대부분 이름조차 생소한 소수민족이나 선주민 단체,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소규모 국가ㆍ민족들이다.

UNPO 홈페이지는 스스로를 비폭력 민주 구성체들의 국제기구라 소개한다. 하지만 소수ㆍ약자라고 해서 온전히 비폭력ㆍ평화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며, 또 모두가 피해자인 것도 아니다. 구소련 카프카스의 독립국 그루지아의 북서부 ‘압하지야(또는 압카지아ㆍAbkhazia) 공화국’이 그 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1992년 이래 일련의 내전을 거쳐 수립한 흑해 연안 국가로, 8,660㎢ 면적에 약 25만 명이 거주한다. 그들이 휴전 중이던 1993년 9월 27일 당시 압하지야자치공화국 수도 수후미(Sukhumi)를 침공, 거주민 중 그루지아인 8,000~1만 명을 학살했다.

소비에트 체제하의 압하지야는 그루지아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그루지아SSR)의 자치공화국으로서, 물론 스탈린 치하의 억압을 겪기도 했지만, 그루지아어가 아닌 압하지야 언어를 교육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켜왔다. 1980년대 말 소비에트가 분열하고 그루지아 독립이 임박해지자 소수의 압하지야 분리주의자들은 독립 투표를 거부하며 소비에트 체제 잔류를 희망했다. 그루지아가 1991년 4월 독립을 선포하자 분리파는 이듬해 7월 그루지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8월 내전이 시작됐다.

체첸 등 북부 카프카스의 무장 부족 등이 용병으로 가세했고, 러시아도 분리파를 지원했다. 전쟁 전 52만 명에 이르던 도시 인구는 내전과 저 학살을 겪으며 20만 명 남짓으로 줄었고, 목숨을 건진 그루지아인 20여 만 명은 난민이 됐다. 양측 전쟁은 1998년과 2001년, 2008년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