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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은 어떻게 1등 명절 선물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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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은 어떻게 1등 명절 선물이 됐나

입력
2018.09.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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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선물세트. CJ제일제당 제공
스팸 선물세트. CJ제일제당 제공

‘스팸은 한국에서 왜 고급스러운 음식인가’(2013년 9월, 영국 BBC)

‘스팸은 한국에서 선물에 들어가는 상품이다’(2014년 1월 미국 뉴욕타임스)

‘스팸은 한국에서 싸구려 고기가 아니라 특별한 선물이다’(2015년 4월, 미국 NPR)

수년 전 미국과 영국 언론이 잇달아 내놓은 기사 제목이다. 이들 매체는 서구 사회에서 싸구려 캔햄 상품으로 인식되는 스팸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한국에서 어떻게 인기를 끌게 됐는지 호기심을 품고 조명했다. 미국 다음으로 스팸을 많이 먹는 나라가 한국인데, 미국 인구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한국에서 미국 스팸 소비량의 절반을 소비하고 있으니 흥미로운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국내 식문화를 접하면서 놀라워 하는 것도 한국인의 스팸 사랑이다. 미국 기업인 마크 테토는 jTBC ‘비정상회담’에서 “스팸은 미국에서 보기 힘든 음식”이라며 “미국에 살면서 통조림 햄을 한번 정도 본 적은 있는데 직접 먹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구인들에게 ‘광고성 이메일’이라는 부정적 표현으로 더 유명한 스팸은 어떻게 한국에서 명절 선물세트의 대명사가 됐을까. 해외 언론에서는 스팸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상품일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이미지까지 있다는 점에 놀라워한다. 한국인이 스팸을 고급 음식으로 여긴다는 견해에는 다소 과장이 있지만, 인기 있는 상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4일 스팸의 국내 판매를 맡고 있는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스팸의 연간 매출은 이 제품이 국내 처음 출시된 1987년 70억원에서 1997년 520억원으로 늘었고 2007년에는 1,250억원, 2017년에는 3,58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4,110억원이다. 웬만한 중견기업의 연간 매출보다 많은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캔햄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은 52.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위는 동원(17.7%), 3위는 롯데푸드(8.1%)였다.

스팸 매출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은 명절 기간 선물세트로 판매되는 양이 일상적으로 판매되는 양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설과 추석 기간 스팸 선물세트 매출액은 지난해 2,13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9%를 차지했고, 올해는 2,59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3%에 이를 전망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직접 소매점에서 구매한 제품보다 명절 선물로 받은 제품을 더 많이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번 추석에는 올 설보다 10% 이상 물량을 늘린 262종 950만 세트를 준비했다”며 “추석에만 1,300억원 이상의 매출로 역대 추석 시즌 최고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팸은 미국의 육가공업체 호멜식품이 1937년 처음 내놓은 상품이다. 돼지 어깨살과 햄에 소금 등을 가미해 만든 스팸은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 있던 당시 미국 저소득층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가운데 하나였다. 스팸이라는 이름에 대해 호멜식품이 공식 설명을 내놓은 적은 없으며 ‘양념을 가미한 햄(Spiced Ham)’이나 ‘쓰지 않아 남는 햄(Spare Ham)’, ‘돼지 어깨살과 햄(Shoulders of Pork and Ham)’의 줄임말이라는 설이 있고, ‘특수 가고된 미국 고기(Specially Processed American Meat)’, ‘특수 가공 군대 고기(Specially Processed Army Meat)’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팸은 냉장보관을 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쓰이기도 했다. 미군이 주둔한 국가에선 스팸이 자연스럽게 전파되며 현지 음식과 어우러졌다. 국내에도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 인근 음식점을 중심으로 캔햄을 사용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부대찌개가 대표적인 메뉴다. 맛 컬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서구보다 한국에서 스팸 인기가 높은 건) 스팸이 빵보다 쌀밥과 잘 어울려서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스팸의 인기에는 CJ제일제당의 영리한 마케팅이 한몫 했다. 1980년대 중반 런천미트를 만들어 팔던 제일제당은 호멜과 상표명 계약을 체결해 스팸을 들여온 뒤 ‘미국산 고급 식품’이라는 이미지로 홍보했다. 육류 소비가 급증하고 맞벌이 가정, 1인 가구가 늘어나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스팸 소비량은 크게 늘었고,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고기’를 선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명절 선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제일제당은 특히 2002년 배우 김원희를 모델로 한 광고에서 ‘따뜻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광고 문구와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키며 스팸의 대중성을 확고히 했다.

시간이 흘러 스팸에 덧씌워진 고급 이미지는 퇴색했지만, 대중적 인기는 여전하다. 선진국에선 빈곤층이 주로 먹는 가공육이라는 사실도 이 같은 인기를 잠재우지 못한다. CJ제일제당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제조법과 철저한 품질 관리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한국 스팸은 미국 제품보다 짠맛이 덜하고 기름기가 덜하다”며 “원료 선택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최고 수준의 품질 및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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