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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환영 시민 얼굴 구석구석에 하나 되고 싶은 간절함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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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환영 시민 얼굴 구석구석에 하나 되고 싶은 간절함 보여"

입력
2018.09.2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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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동행한 방북 인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 현정화 한국 마사회 탁구단 감독, 유홍준 명지대 석좌 교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소장, 최태원 SK 회장, 최현우 마술사,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재현 산림청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평양 동행한 방북 인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 현정화 한국 마사회 탁구단 감독, 유홍준 명지대 석좌 교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소장, 최태원 SK 회장, 최현우 마술사,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재현 산림청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마친 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차범근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마친 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차범근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날 평양에 도착했을 때 내가 느끼기에 진짜 평양의 온 시민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우리를 환영하는 시민들 얼굴 구석구석에 하나가 되고 싶은 그런 간절함이 엿보였다. 이들도 통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애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빛나는 조국’ 공연을 보는데 수건을 안 꺼낼 수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들의 표정에서 ‘잘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함, 애절함이 엿보여 나를 ‘울컥’ ‘울컥’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날 천지를 보는 데 가슴이 벅차고 뜨거웠다. 말로만 듣던 천지에 손을 담그니 감격스러웠다. 몇 년 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간 적이 있다. 그 때도 날씨가 흐렸다가 거짓말처럼 맑아졌는데 당시에는 천지에 직접 내려갈 수 없었으니 이번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감정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내가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뛸 때(1979~89년)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1989년 은퇴하고 1990년 1월에 한국으로 왔는데 그 해 가을(10월) 독일이 통일 됐다. 나는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서독이 동독을 도우려는 것, 주변국의 반대 등을 직접 눈으로 봤다. 우리 팀(레버쿠젠)에도 동독에서 넘어온 선수가 4명이나 있었다.

그 때는 분단국가가 독일과 한국뿐이었다. 우리만 분단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도 받았는데 여전히 남북만 나뉘어져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남북이 70년 간 떨어져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서독이 통일 과정에서 동독을 위해 정말 많이 베풀었다. 통일이 되는 과정의 여러 부작용을 다 서독이 포용한 것 아닌가. 통일 전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게 문화, 스포츠다. 그 중에서도 축구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의 관심사고 우리 민족에 자긍심을 가져줄 수 있는 종목이다. 축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는 2002년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포츠 이벤트가 일회성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축구가 해야 한다.

▦현정화 렛츠런(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특별수행원 신분으로 방북일정을 마친 현정화 탁구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특별수행원 신분으로 방북일정을 마친 현정화 탁구감독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3년 전(2005년 평양에서 열린 6ㆍ15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평양에 갔을 때는 우리를 수행했던 북한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사납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밝고 나긋나긋하더라. 13년 전에는 건물도 다 흑색에 무채색이었는데 고층 건물도 많아졌다. 양국 정상 분위기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친밀하고 정감어린 분위기가 형성됐다. 두 정상이 만찬만 4번을 했고 우리도 동참했다. 국가 정상과 한 번 밥 먹기도 힘든데 그것도 남북 정상 모두와 4번이나(웃음).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는 거다. 천지는 정말 장관이었다. 날씨가 좋았고 어찌나 물이 맑은지 물속에 비친 산의 전경이 사진에 그대로 또렷하게 나왔다.

첫 날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원래 일정에 리분희(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곧 재회하리라 기대해본다. 북측 간부가 나를 보더니 ‘리분희 동지는 곧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리분희 동지는 지금 얼굴이 많이 통통 해졌습니다’고 말해줬다. 느낌이 좋았다.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방북은 유난히 인상 깊었다. 환영 일정과 의전만 봐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의 환대도 형식적인 인사가 아닌 진정성이 엿보였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김 위원장은 한발 앞서 움직였다. 항상 먼저 장소를 찾아가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렸다.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 앞에서 문 대통령을 정중히 맞았다. 평양 옥류관을 갔을 때는 문 대통령이 일정에 차질이 생겨 15분 정도 늦었다. 그 때도 김 위원장이 입구에 서서 문 대통령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옥류관에서 ‘평양랭면’을 먹는데 리 여사가 왼편에 앉은 저에게 “평양랭면 처음 드십니까”하고 물었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평양냉면집은 1시간 이상 기다려야 먹는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들쭉술이 든 잔을 가리키면서 “여러분에게 더 자랑하고 싶다”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들쭉술은 백두산에서 나는 들쭉나무 열매로 만든 술로 북한의 와인이라고 불린다. 소문대로 향이 독특했다.

마음 같아서는 북한의 문화유산을 답사한 후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를 쓰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정상 거기까진 얘기를 나눠보지 못했다. 문화계 인사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하게 된 것만으로도 깊은 의미로 남을 것 같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일정을 마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일정을 마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건 많이 듣고 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여건이 됐을 때 남북경협 등 일하기가 수월할 거로 생각했다.

일정이 허락하는 대로 다양하게 보고 만나려 했다. 오고 가며 보는 평양의 달라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평양 시내에 조성된 거리와 건물들의 규모와 모습에 놀랐다. 시민들도 여유롭고 활기 있어 보였다.

교원대학과 양묘장, 학생 소년 궁전 등 인재ㆍ과학 관련 시설도 참관했다. 이곳에 만난 북한 주민들은 경제발전에 관심이 높았다. 산림 관련 견학도 했다. 리용남 내각 부총리와 한 시간 가까이 만나면서 철도 관광 등에 관한 질문도 하고 각자 사업 소개도 했다. 백두산을 오르며 불과 일 년 전엔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일정을 마친 최태원 SK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일정을 마친 최태원 SK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북한에 가보니 많은 발전이 있었던 거 같다. 높은 건물도 많아졌고, 나무들도 많이 자라 상당히 보기 좋았다. 양묘장부터 학교까지 많은 것을 구경했고, 새로운 걸 보려고 노력했다.

남북 경제협력은 어찌 보면 현재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백지에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본 것을 토대로 길이 열리면 무엇을 할지 앞으로 정리해야 할 생각들이 많다.

아직은 이렇게 하겠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보고 듣고 온 걸 소화하고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한반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일정 내내 기회 있을 때마다 개성공단 재개에 관해 얘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며 개성공단 정상화 의지를 전하며, 북한의 계획을 물었다. 김 위원장은 웃으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측근들은 “개성공단은 지금도 열려 있으니 언제든 오라”고 했다.

북한이 정말 변하고 있다. 민간교류 차원에서 방문했던 2007년과 이번 방북 때 접한 평양은 차이가 컸다. 거리가 많이 발전돼 보였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옷맵시가 확 달라졌다. 개방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를 인정하고 종전 선언과 철도 도로 연결 사업 등이 연내 이뤄지면 개성공단 역시 연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96% 정도가 재입주를 희망하고 있다. 북한도 개성공단 정상화를 원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 이번 방북의 가장 큰 성과다.

▦김재현 산림청장

김재현 산림청장이 21일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임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대추, 곶감 등 판매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김재현 산림청장이 21일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서 열린 임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대추, 곶감 등 판매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서해 직항로를 타고 가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북한의 산림이 인상적이었다. 평양 주변 구릉성 산지에는 거의 나무가 없었지만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로 가는 길은 비교적 조림이 잘 돼 있었다.

메타세쿼이어, 은단풍, 아카시아 등 속성수(생장 속도가 빠른 나무) 위주로 많이 심어져 있었다. 평양 시내 가로수도 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 등으로 관리가 잘 돼 있었다. 압록강 일대 혜산 주변은 산림이 많이 훼손돼 있었다.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까지 40㎞ 가량 차량으로 이동하며 바라본 백두산은 이깔나무가 장관이었고, 자작나무에 노란 단풍이 든 모습도 아름다웠다. 백두산은 보존이 잘 돼 있었다. 앞으로 관광객들에 개방한다고 하는데 보존 대책과 함께 관광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신상순 선임기자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신상순 선임기자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해양수산과 관련된 분야 3가지 담겼다. 서해해상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정, 서해경제공동특구, 동해관광공동특구 등이다. 또 군사합의서에는 해주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해 군사적 보강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추가적 군사협의 이후 다양한 해양수산협력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서해 5도(백령도ㆍ대청도ㆍ소청도ㆍ연평도ㆍ우도) 접경 수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면 그간 어업인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각종 규제 완화도 국방부와 적극 협의하겠다. 이미 서해5도 어업인 대표와 인천시, 인천 옹진군, 해경, 해군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여론을 수렴했다. 앞으로 서해어업인들이 한반도 평화시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최현우 마술사

최현우 마술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현우 마술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서울로 다시 돌아 온 지금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18일 열린 환영만찬에서 텔레파시 마술을 선보였다. 마술 안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텔레파시 마술을 ‘교감 요술’이라고 한다고 한다. 머리 속에 생각한 숫자나 카드를 맞히는 간단한 마술이었지만 두 정상이 교감이 돼서 서로의 생각을 맞힌다면 마술처럼 통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정상과 여사 두 분도 매우 즐거워하셨다. 북한에서는 마술사에게 인민배우라는 칭호를 부여할 정도로 마술이 국가예술사업 중 하나라고 한다. 판문점에서 열린 지난 정상회담 때는 북측의 대표 마술사가 마술을 선보였듯 귀빈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게 관례라고 한다. 나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제가 없어지나요?”라는 리설주 여사의 말이 큰 화제가 됐다는 건 돌아온 후에야 알았다. 평양의 분위기는 마치 축제 같았다. 다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마술 같은 순간이었다. 남북 합동 마술쇼가 서울에서 열렸으면 좋겠다. 지난 8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 마술 올림픽에서 남북 공동 마술쇼를 추진했지만 막판에 무산돼 아쉬운 마음이었다. 마술이 통일로 가는 작은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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