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18년 전 '흑색도시'가 상전벽해... 여명거리 활기 넘쳐"

알림

"18년 전 '흑색도시'가 상전벽해... 여명거리 활기 넘쳐"

입력
2018.09.21 14:56
수정
2018.09.21 21:26
2면
0 0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전남 목포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걸 평양이 먼저 했구나.’

나흘 전 북한 평양에 도착했을 때 느낀 첫인상이었다. 18년 전 첫 남북정상회담과 비교하면, 북한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됐다. 평양 시내에는 활기가 돌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평양 시내를 보고 ‘북한이 이제는 문명국가로 진입했다’고 생각했다. 6ㆍ25시절인 60여년 전 평양에 하늘로 솟은 건물은 겨우 두 채뿐이었다고 한다. 이후 40여년이 흐른 2000년대에는 높은 건물들은 늘었지만, 흑색도시란 점은 변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평양은 서울과 흡사했다.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때 우리를 환영하러 나온 인파는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영양실조로 이가 빠진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흘 전 평양에서는 이가 빠진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주민들의 영양 상태도 아주 좋았다. 시내 곳곳에서는 뾰족한 하이힐을 신은 여성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화장은 예전보다 훨씬 짙어졌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서울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순간 궁금증이 생겨 “북한 여성들은 성형수술을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북한의 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명거리에 있는 과학자아파트였다. 젊은 학자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들이 확실히 대우를 받고 있었다. 연구 중심으로 운영하기 위해 권위적인 문화를 타파한 것이다. 개혁ㆍ개방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고, 북한 사회에도 희망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도 새로워졌다. 천지 방문은 두 번째로, 이전에는 도로나 시설물이 전혀 없었다. 주변에 새 건물들이 세워졌고, 케이블카도 새 것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관광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과 개성, 금강산, 백두산을 개방해 관광사업을 활성화하면 우리도 로마처럼 관광수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자세는 확연히 달라졌다. 오히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공인’한 셈이 됐다. 18년 전 평양 시내에 나부끼던 적대적인 구호와 벽호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경제 발전을 강조하는 구호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수행단에 대한 의전도 파격적이었다. 18년 전 정상회담 일정은 ‘깜깜이’였다. 이번에는 모든 일정이 예측 가능했고, 의전도 사전준비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능라도체육관에서 문 대통령에게 쏟아진 북한 주민들의 박수갈채는, 이제 비핵화는 김 위원장과 군 수뇌부는 물론 주민들도 지지한다는 증표 같았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말하자, 주민들은 순간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소리를 지르며 열렬하게 환호해줬다. 북한 주민들도 이제 비핵화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북한 지도자들의 태도도 180도 바뀌었다. 내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만났을 때 “지금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탔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며 비핵화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떻게 위대한 존엄에게 ‘죽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북한 측 인사들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다 받아들였고, 과감한 표현을 써도 경청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비핵화’ 얘기만 꺼내면 북한 고위급들은 곧장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북한 내부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남북 정상의 사이도 매우 가까워졌다. 숱한 정상회담을 경험했지만, 두 정상이 많은 시간을 보낸 긴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거닐며 물을 뜨는 모습을 보면서 ‘남북이 언제 적대국가였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흘간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북한이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받아들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 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총회에서 리영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겠다고 움직인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남북정상은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미국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번 회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의 노력에 성의를 보이며 답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박지원·민주평화당 국회의원

정리=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서진석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