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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원룸, 문고리만 교체해도 예쁜 집으로

입력
2018.09.22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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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원룸은 조금만 신경 쓰면 예쁜 집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최고요 제공
낡은 원룸은 조금만 신경 쓰면 예쁜 집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최고요 제공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입니다. 이 대답은 거실, 주방, 침실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는 지금의 집에도 해당되고 서울살이를 시작하며 처음 얻은 다섯 평 남짓의 옥탑방에도 해당됐습니다. 신축 빌라의 옥탑방에서 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풀옵션 원룸으로, 그 다음에는 아주 낡은 분리형 원룸, 또 낡은 투룸을 거쳐 지금의 방 세 개짜리 오래된 상가주택까지. 네 번의 이사와 다섯 군데의 집을 경험하면서 사소한 불평은 있었을지언정, 대체로 살게 된 공간을 좋아했습니다. 한겨울 추워서 벌벌 떨어야 했던 옥탑방에도, 옆집 남자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들려오던 풀옵션 원룸에도, 너무 낡아 다 뜯어 고쳐야 했던 그 이후의 집에도 친구들과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초대하곤 했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꾸미는 일을 좋아해서 이사하는 과정도 즐기는 편이지만, 늘 집을 구하는데 자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낮엔 깨끗하고 전망 좋았던 집이 밤엔 바퀴벌레 소굴인 것을 확인한 순간,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벽지 위로 빼곡히 자리잡은 곰팡이를 발견한 날, 우수한 접근성에 반해 얻은 원룸의 벽 틈새에서 개미가 우르르 몰려나오던 날까지…. 그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관리가 잘 되지 않은 집을 구해서 새롭게 바꾸겠다’는 생각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저에겐 콧대 높은 서울의 집들을 상대하는 일종의 전략이었습니다. 빌라의 가건물 옥탑방과, 풀옵션 원룸을 거쳐 낡디 낡은 분리형 원룸을 얻은 날 처음으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을 고치기로 마음먹었죠. 별다른 인테리어 기술도 없는 내가 고친다고 해서 꿈꾸던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마음은 이내 안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처음 방문을 흰색으로 페인팅하고, 손잡이를 교체해본 때였을 겁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집을 고치고 사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집을 고치고 2년 반을 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돼 집을 내놓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힘들게 수리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나가냐’ 묻더군요. 수리된 집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계약했습니다. ‘이렇게 예쁜 집을 얻다니 정말 운이 좋다’며 행복해하는 다음 세입자를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그 공간이 떠올랐죠. 제가 오기 이전엔 몇 달간 비어있던 집이었습니다. 그날 밤 일기에는 ‘서울 하늘 아래 예쁜 월셋방이 하나 더 늘어나 기쁘다’고 적었습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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