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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샴푸세트…” 회사 명절선물, 되팔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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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샴푸세트…” 회사 명절선물, 되팔기도

입력
2018.09.20 20:00
수정
2018.09.21 00:3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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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과 식용유' '치약과 샴푸' 세트는 가성비와 실용성 덕에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명절 단골 선물세트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팸과 식용유' '치약과 샴푸' 세트는 가성비와 실용성 덕에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명절 단골 선물세트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약회사 영업직 3년 차 최모(29)씨는 ‘명절선물’ 사내 안내를 받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회사가 준비한 한가위 선물도 어김없이 샴푸세트. 이전 6번의 명절과 똑같은 샴푸세트 선물에, 반가운 마음보다 방 한구석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쌓여있는 녀석들이 떠올랐다. 최씨는 “혼자 사는데 집에 쌓인 샴푸만 십 수개”라며 “매년 한결같은 명절선물이 오히려 짐짝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툴툴댔다.

코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연휴, 이맘때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돌리는 추석선물이다. 그러나 일부 직장인은 매년 반복되는 생색내기용 추석선물이 달갑지만은 않은 존재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샴푸나 스팸처럼 ‘명절선물 스테디셀러’라 불리는 일부 품목은 “차라리 안 주느니만 못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식품회사에 다니는 강모(30)씨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참치와 식용유 세트를 선물로 받았는데 솔직히 추석선물까지 회사 물품을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화장품업체에 다녔다는 박모(26)씨는 “이전 회사는 명절 때마다 안 팔리고 남은, 유통기한 임박한 화장품 재고를 줬다”라면서 “잔반 처리도 아니고 그게 어떻게 ‘선물’이 될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중견기업 총무팀 이모(35)씨는 “기업의 명절선물은 보통 법인 거래를 하는 ‘특판’이라는 시장을 통하는데, 샴푸나 스팸 세트가 공동구매 시 저렴하고 변질될 우려도 없어 가성비나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낫다”고 설명했다.

명절 전후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회사에서 받은 선물세트 판매한다"는 글이 넘친다. 인터넷 캡처
명절 전후로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회사에서 받은 선물세트 판매한다"는 글이 넘친다. 인터넷 캡처

이처럼 주는 사람 맘 따로, 받는 사람 맘 따로이다 보니 명절 전후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선물세트 팝니다’ 글이 급증한다. ‘중고나라’에는 20일 기준 명절선물을 되판다는 글이 1분 간격으로 올라와 있다. 품목은 대개 식용유 햄 참치 샴푸 같은 생필품이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명절 전후 선물세트 거래량은 평소보다 10배 이상 많다”고 했다.

일부 직장인은 아예 되팔 목적으로 추석선물을 기다린다. 회사가 제시한 샴푸 스팸 홍삼 3가지 세트 중 홍삼을 골랐다는 직장인 정모(33)씨는 “무조건 되팔 때 가격을 고려해 추석선물을 택한다”며 “명절 상여금도 없는데 이렇게라도 챙겨야지 않겠냐”고 털어놨다.

되파는 건 양반, 심지어 환불 얌체족도 극성을 부린다. 신선식품세트를 사갔다가 제사상에 올린 뒤 다시 포장해 환불해 달라거나, 사은품만 챙기고 반품해 달라는 식이다. 서울 마포구 농협하나로마트 직원 장모씨는 “식용유세트를 여러 개 사가면서 식용유 몇 개를 서비스로 받아가고 몇 시간 뒤 사은품을 안 받은 것처럼 식용유세트만 환불해 달라는 40대 여성도 있었다”라며 “명절을 빙자해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는 악성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실물 선물에 직장인들이 염증을 느끼면서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이나 기프티콘을 명절선물로 주는 업체도 차츰 늘고 있다. 일각에선 명절선물을 아예 받지 못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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