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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7년 만에 ‘절대선’이 된 집값 하락

입력
2018.09.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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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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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쏟아지는 걸 보면 7년 전이 떠오릅니다. 물론 당시 정부는 침체된 시장을 살리겠다며 모든 대책을 동원했던 터라 현 정부의 정책 목표와는 정반대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 방식을 보면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바로 ‘정책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정책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점과 그 정책의 중심에 서울 강남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민을 위하겠다는 정책 명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같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정반대인 셈이죠. 무엇이 옳고 틀렸다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그간의 상황을 쭉 지켜보니 정책 효과란 건 아주 서서히 나타나는데, 관료들이 정책을 내놓을 땐 바로 눈앞에 있는 시장 상황을 가장 고려하다 보니 뒤늦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불쑥불쑥 터진다는 겁니다. 최근 쏟아지는 규제책을 보며 7년 전 상황이 묘하게 겹친 이유입니다.

◇집값 떨어져도 집 안 사던 그 시절

7년 전 상황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부동산 시장은 반짝 반등한 뒤 2010년 이후 침체기를 겪습니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대출 받아 집을 샀는데 집값이 폭락해 한 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하우스푸어’를 다룬 기사가 연일 쏟아졌고, 분양가보다 집값을 낮추는 ‘할인 분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건설사와 이미 분양 받은 입주민 간 갈등이 극에 달했습니다. 주택거래가 끊기면서 부동산 중개, 가구ㆍ인테리어 업소와 같은 주택ㆍ건설 연관 업종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졌죠. 매매 대신 전세로 수요가 몰리면서 전월셋값에 고통받는 ‘렌트푸어’란 말이 일상어처럼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집값이 떨어지면 다들 집을 살 텐데 싶은데 그땐 집값이 더 떨어질 거란 전망에 매매 심리가 싹 걷힌 시점이라 ‘집을 사면 바보다’란 말이 아주 자연히 퍼지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서점에 가보면 ‘부동산 재테크’ 책이 가판대 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엔 ‘집값 상승, 더는 없다’와 같은 극단적 내용의 책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살리기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죠. 지금은 혹시라도 정부부처 장관이 ‘집값이 오를 거다’ 이런 식으로 발언을 하면 투기를 조장했단 이유로 상당한 반발이 부닥치겠지만 당시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 권도엽 국토부 장관은 ‘집값 주기론’을 내세우며 집값 상승을 자주 점쳤습니다. 웬만큼 집값이 떨어졌으니 이제 오를 때가 됐다는 논리죠.

시장 살리기 대책도 쏟아냈습니다. 가장 먼저 서울 강남에 채워진 족쇄들을 하나씩 걷어냈습니다. 강남 3구에 적용된 투기과열지구를 걷어내고, 시간이 지난 뒤엔 투기지역 규제도 걷어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제도 폐지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정부가 강남 부자만을 위한 정책만 내놓는 것 아니냔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이란 정부 논리에 힘이 실리며 규제들은 모두 풀렸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대장주가 서울 강남이니 이 지역 시장이 살아야 온기가 주변으로 퍼지고, 그래야 주택 시장 수급 문제가 풀려 서민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죠. 집값 역시 더는 하락하면 안 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국토부 주택정책을 총괄하던 박상우 실장(현 LH 사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집값이 더 떨어져야 좋은 거 아니냔 질문에 그는 “집값이 거품이 끼어 폭락할 거란 사람이 있지만 장기적으론 물가상승률만큼 오른 터라 차라리 지금처럼 급매물이 넘쳐날 때 집을 사는 게 좋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기가 풀리면 집값도 반등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주택자를 향해 집을 팔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던 셈이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집값 살리기 정책은 쭉 이어졌습니다. 정책 방향은 비슷했는데, 강남 재건축 활성화 정책과 함께 주택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최초로 금리 1.5%짜리 공유형 대출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찾는 사람이 없지만요.

◇뒤늦게 뛴 서울, 규제책 쏟아내는 문 정부

정부의 모든 대책에도 집값은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되레 그간 주택공급이 부족했던 지방을 중심으로 시장이 들썩였는데, 지방의 상승세가 꺾일 때쯤 뒤늦게 서울시장이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서울은 2015년부터 뛰기 시작했고, 최근엔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거래 활성화 정책이 뒤늦게 효과를 발휘한 셈이죠.

아이러니하게 새 정부는 이런 서울 집값을 꺾기 위해 다시 규제책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규제책의 중심엔 서울 강남이 있습니다. 강남 집값이 묶여야 그 파급이 주변 지역으로 퍼지지 않고, 결과적으로 집값이 안정돼 서민에게 도움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7년 전 정부가 제시한 논리와 똑같습니다. 집값을 내리겠단 정부의 의지는 단호해 보입니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거시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부동산 정책으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임종룡 전 위원장이 “LTV 규제는 가계부채 규제여서 부동산 규제로는 절대 활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새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거죠.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 방침에 우려를 표합니다. 사실 서울을 제외하면 다른 지방 부동산은 이미 꺾인 상황이라 오히려 거래가 잘 안돼 불편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중앙정부가 모든 정책을 쏟아내는 게 과연 맞느냐는 거죠. 단기적으로 서울 집값을 잡을 순 있어도 장기적으론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것 아니냔 우려도 나옵니다. 최근 서울 집값이 뒤늦게 폭발한 것처럼요. 정책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 역시 당장 서울 집값이 잡히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효과가 없으면 ‘추가 대책이 줄줄이 대기 중’이란 정부의 대응이 마뜩찮은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정책을 짜는 관료는 임기 때만 일하고 인사이동을 하면 끝이지만 정책 효과는 아주 서서히 나타나며 이후엔 상당한 파급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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