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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백두산 천지에 선 한반도 평화여정

입력
2018.09.2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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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상생활에서 종종 사용하는 ‘흉금’은 가슴을 뜻하는 흉(胸)과 그 앞의 옷깃을 말하는 금(襟)이 합쳐진 한자어로 ‘가슴 속 깊이 품은 생각이나 뜻’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흉금을 털어놓거나 토로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피튀기는 밀당이 오가는 협상이나 거래에서 섣불리 흉금을 펼치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행위다. 비슷한 말로는 흉심(胸心) 등도 있으나 허심탄회(虛心坦懷)가 더 가깝다.

▦ 한반도의 새로운 시간과 지평을 연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끌어내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친교산행’으로 마무리한 2박3일의 3차 남북정상회담은 내내 흉금을 털어놓는 자리였다. 출발 전날 “김 위원장과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라고 말한 문 대통령은 첫날 만찬사에서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오갔던 김 위원장과 나 사이에는 신뢰와 우정이 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도 환영사에서 “북남관계에 꽃피는 봄날과 풍요한 결실만 있도록 문 대통령과 제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공동선언에서도 ‘흉금을 터놓은 진지한 논의’를 강조했다

▦ 두 사람의 열린 흉금이 가장 빛을 발한 장면은 15만 북한 주민이 운집한 능라도 5ㆍ1 경기장에서 서로에게 바친 헌사였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소개하며 “오늘 이순간을 역사는 훌륭한 화폭으로 길이길이 전할 것”이라고 했고, 문 대통령은 “나와 함께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초청한 사람이나 초청받은 사람이나 부담이 큰 행사였지만, 맞잡고 높이 치켜든 손엔 거리낌이 없었다.

▦ 번외 이벤트로 진행된 백두산 친교산행은 흉금을 꿰뚫는 우정의 화룡점정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래킹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것도 “중국 땅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땅을 밟고 올라가겠다”는 손님의 소원과 고집을 잊지않고 배려했으니 말이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정상에 우뚝선 두 남북 지도자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9월 평양선언은 말 그대로 담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온갖 암초와 역경이 기다리지만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온 것을 두 사람도 잘 안다. 맑은 가을하늘 밑의 천지는 이 여정의 증인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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