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석의 성경 ‘속’ 이야기] <48> 방랑

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쉬고 있는 어느 어린 베두인의 모습. 유대민족의 역사는 이런 방랑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경의 유명한 인물 아브라함은 태생이 방랑자다. 가족을 이끌고 집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방랑했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자기가 가족을 이끌고 방랑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심지어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듣지도 못했지만 일단은 떠났다고 한다.(히브리서 11:8-9) 이렇게 그는 방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첫 조상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후손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마치 숙명처럼 방랑을 했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3대 자손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반유목(semi-nomadic) 생활을 했다. 지금 중동지역 사막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베두인들과 같았다. 그런데 방랑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의미심장한 약속 하나를 했다. ‘자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사막에서 방랑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약속이다. 남의 땅에서 늘 방랑하기에, 그들은 쉽게 적에게 노출되어 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이 있었다. 임신의 가능성이나 자식의 생존율도 현저히 낮은 때였다. 방랑자에게 자손의 약속은 매우 귀중했다. 더 나아가 정착할 땅까지 주시겠다고 하시니, 그야말로 꿈같은 약속이다. 집값에 좌절하고 전세살이에 지친 우리들이 상상해 보아도 놀라운 일이다.

◇자손과 땅을 준다는 약속

이 약속은 구약성서의 ‘척추’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주제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늘 되뇌어졌으며, 지금껏 유대인들의 정신 속에서 잊힌 적이 없는 언약이다. 아우슈비츠 학살 때 이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으며, 1948년 팔레스타인에 다시 나라를 세울 때에도 이 약속을 읊었을 것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곳은 이집트였다. 정착했지만 자기네 땅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곳에서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 그들을 구출해 내고 노예의 굴레를 벗겨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마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한 격이었다. 그리고는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에서 방랑을 한다. 신혼 초와 같았던 방랑시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만이 많았다. 광야 생활은 악몽으로만 기억될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에,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 같았다. 내가 너희 조상을 처음 보았을 때에, 제 철에 막 익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보는 듯하였다.”(호세아 9:10)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젊은 시절에 얼마나 나에게 성실하였는지, 네가 신부 시절에 얼마나 나를 사랑하였는지, 저 광야에서, 씨를 뿌리지 못하는 저 땅에서, 네가 어떻게 나를 따랐는지, 내가 잘 기억하고 있다.”(예레미야 2:2) 서로 간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광야 방랑시기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신다.

연애 초기나 신혼 때, 서로들 많이 다툰다. 이유는 사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싸우지도 않는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도 신혼 부부 같았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친밀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하는 시기기 왔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열렬히 싸우던 신혼 초 광야 생활을 아름답게 떠올리셨다.

◇끊이지 않는 방랑의 길

광야는 사막이라 아무것도 없다. 사막에 가보면 땅과 하늘 밖에 안 보인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들 둘 말고는 사막에 아무 것도 없었다. 사막의 하늘과 땅처럼 서로만 마주 보고 의지하며 살았다. 나중에 광야 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었던 땅 가나안으로 가서 정착한다. 드디어 자기 집이 생긴 것이다. 그곳은 사막에 비하면 풍요로웠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많았다. 사막에서와는 달리 이제 하나님 말고도 더 좋은 것이 많았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자면, 가진 건 없지만 서로만 바라보고 알콩달콩했던 방랑시기가 더 행복했다.

인생이 사막 같고 방랑하는 시련이 온다면, 신앙인들은 하나님과 가장 친밀해질 수 있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시련은 가족 간의 가장 큰 결속과 친밀의 시간을 선사해 줄 수도 있다. 시련을 가정 파탄의 빌미로 삼는 자는 무책임하고 어리석다.

이스라엘이 정착한 가나안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이다. 풍요로운 곳에 정착을 하고는, 하나님께 최악의 실망만 안겨드렸다. 진노한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부터 쫓아내어 버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한다. 그들에게 또다시 방랑이 찾아 온 것이다.

쫓겨나 바벨론 ‘방랑’을 했던 포로기 시절에 고대 이스라엘은 최고의 종교적 성취를 이룬다. 가진 것을 잃고 방랑을 하자 정신차린 것이다. 벨 하우젠이라는 유명한 성서학자는 이 시기를 빌어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잡혀갔다가 교회가 되어 돌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나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방랑했을 때 유대인은 아름다웠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사에 있어 최고의 것은 모두 이때 발전했다. 민족과 종교의 생존이 위협받자, 그들은 자신의 전승을 본격적으로 문서화하여 성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제의가 그들 신앙의 핵심이었으나, 제의를 드릴 처소를 잃자 그들은 말씀(율법)을 신앙의 중심으로 두게 되었다. 이는 유대교라는 종교의 역사적 초석이 되었다. 유일신 사상도 더 첨예화되고 강화되었다. 땅을 잃고 또다시 방랑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가장 선한 것을 낳았다.

인생이 잘 나갈 때, 하나님은 그저 삶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되면, 당장 하나님은 그 사람의 전부가 된다.

◇정착과 방랑 사이, 디아스포라

포로기를 지나고, 이스라엘은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땅에 정착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땅에 정착하자 그들은 또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포로기 전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가나안 땅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과,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돌아 온 유대인들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생겨났다. 서로 싸우고 난리였다. 종교적 타락과 정치적 혼탁도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외세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바벨론 제국에 이어 페르시아의 압제 아래 살아야 했으며, 이후 헬라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기원후 1세기에 예루살렘은 다시 무너지며, 유대인들은 또 다시 도망가야 했다. 다시 땅을 잃은 방랑자들이 된다. 15세기에도 다시 핍박을 받게 되어, 멀리 러시아나 동유럽, 아프리카와 중국에까지 흩어져 살게 되었다. 그들을 흔히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세상을 방랑하며, 또 다시 놀라운 사람들이 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자산이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앨버트 아인슈타인, 펠릭스 멘델스존, 바뤼히 스피노자, 버트란드 러셀, 에릭 프롬, 마틴 부버, 빌 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등등. 모두 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며 방랑자의 후손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1948년, 방랑하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또 다시 나라를 세운다. 많은 유대인들이 방랑을 멈추고 국가 이스라엘에 돌아와 정착한다. 근본주의적 유대인들은 이를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로 본다. 하지만 그들의 건국은, 그들의 정착은 또다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왔다. 끔찍한 피를 부르는 전쟁의 시작이었으며, 이로 인한 중동 지역의 분쟁은 인류 미래의 큰 근심거리가 되어버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유대인들은 정착할 때 보다 방랑할 때 제일 아름다웠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건국 선언을 하고 있다. 마침내 정착할 땅을 지니게 됐으나 그래서 유대인은 더 존경받게 되었는가.

그래서 ‘땅’은 유대인의 신앙과 철학, 예술에 있어 가장 깊은 근저에 있는 혼과 같다.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일간지 이름은 ‘하아레츠’며, 뜻은 ‘그 땅’이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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