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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국민연금 개편, 현세대의 눈 아닌 자식세대 눈으로 봐야”

입력
2018.09.20 20:00
수정
2018.09.20 20:4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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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지난 달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안으로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안과 재정건전성 확보에 중점을 둔 방안 등 두 가지를 제시한 데 이어, 이번 주부터 총 16회에 달하는 순회 토론회를 시작했다. 3차 추계(2013년) 때보다 기금이 3년 이른 2057년에 고갈될 것이란 4차 추계결과를 바탕으로 2088년까지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금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잡았다.

위원회는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19년 11%로 올린 후 2034년부터 12.3%로 올리는 방안(‘가’ 안)과 현행대로 소득대체율이 2028년까지 40%까지 낮아지는 데 따라 보험료율을 향후 10년간 13.5%로 올리는 방안(‘나’ 안)을 제시했다. ‘가’ 안은 노후소득 보장 강화에, ‘나’ 안은 재정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소득 대비 국민연금 수령액 비중으로 연금급여율(급여)이라고도 한다. 2018년 소득대체율은 45%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은 50%로 매우 높다.

재정안정을 기하려면 소득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소득보장을 강화하려면 재정안정이 흔들리는 것이 국민연금의 딜레마다. 또 지금 세대가 혜택을 많이 보면 다음 세대에 부담이 커진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두 차례 개편이 있었으나 기금고갈 우려와 재정안정론이 힘을 받으면서 소득보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이 있긴 있는 것일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정해식 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과 함께 국민연금 제도개편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다.

오건호(가운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과 정해식(오른쪽) 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이 18일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조재우 논설위원과 국민연금 제도개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오건호(가운데)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과 정해식(오른쪽) 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이 18일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조재우 논설위원과 국민연금 제도개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국민연금 토론회가 시작됐다. 국민연금 제도개선에 국민도 스스로 참여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토론방식과 결정과정의 변화가 있다는 얘긴데 어떤 의미를 둘 수 있나.

오건호(오): 일반 시민의 의견은 공통분모가 많을 순 있다. 그런데 개혁의 에너지가 될지는 모르겠다. 전문가들은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국민들은 강하게 저항한다. 그래서 전문가 중심의 정책적 솔루션보다는 국민적 정서와 정치적 상황이 반영된 해법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정해식(정): 국회에서는 후세대 부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급여는 낮추는 선택이 반복돼 왔다. 오히려 실제로 보험료를 부담할 의지가 있는 국민이 급여를 높여 보자거나 필요한 보험료를 내겠다는 의견으로 수렴된다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가 국민여론 뒤에 숨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안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방향도 없이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요식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오: 워낙 국민연금에 대한 여론이 안 좋다 보니 정부는 ‘국민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계십니다’는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가진 집단 지성에 대한 기대도 있다. 아직 국민연금을 자기 세대 시야에서만 보고 있다. 토론이 이뤄지면 부모들이 자식 세대를 걱정할 거다.

정: 개혁 방향성에 다양한 관점이 있다. 맞다 틀리다고 판단을 하기 어려울 정도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반드시 올려야 할 만큼 위기상황인지에 대한 문제도 판단이 다르다. 정부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민연금이 기금고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프레임이라는 용어가 나온 걸 보면 국민연금 논쟁에도 진영논리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정: 기금고갈이라는 걸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위협하면서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급여를 깎아야 할 것 같다든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 기금고갈 프레임을 너무 활용하는 거 아니냐고 반대쪽에서 이야기한다. 기금고갈이라는 부분은 40년 뒤의 일이다.

오: 재정을 진단했더니 2057년에 소진된다고 나온 거다. 건강검진을 했더니 몸에 문제가 발견된 거다.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논의를 하면 된다. 민주노총에서 ‘기금고갈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했다. 없는 태풍이나 늑대가 온다고 위협하는 거라면 굿판이나 광풍이겠지만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정부가 만들어 낸 결과다.

-보험료율이 30%까지 올라가야 한다는데.

정: 추계위원장이 ‘그때쯤 되면 보험료율이 30% 가까이 되니 한국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이민 갈 거다’고 했다. 계산해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때 가서 월평균 소득이 3,000만원이면 본인 부담 500만원, 사용자 500만원 등 1,000만원으로 부담이 적진 않다. 하지만 3,000만원 버는데 500만원 낸다고 이민 간다면 한국 사회 상위 5%는 벌써 다 이민 갔다.

오: 기금소진을 알리는 여러 평가지표가 있다. 그런데 그게 다 안 좋다. 재정불안 요인이 생기는 본질은 이미 내재해있는 수지 불균형이고 수명 연장이 그 문제를 좀 더 증폭시킨 거다. 다른 나라들은 수지균형을 맞춰놨다. 독일은 보험료율 18%, 소득대체율 48%다.

정: 국민연금이 처음부터 기금을 다 쌓기로 한 건 아니다. 처음에는 보험료율을 3%, 소득대체율을 70%로 했다. 이후 보험료는 올렸고 소득대체율은 점점 내려왔던 거다. 보험료율이 1998년 9%로 올라간 이후 ‘마의 9%’ 벽이 생겼고, 이를 깨면 어마어마한 피해가 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 강화 방안 둘 중 어느 것에 무게가 실려야 하냐가 가장 큰 쟁점이다.

오: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가’안, 한 사람은 ‘나’안을 선호한다. 얼핏 보면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다. 공청회 때 드러난 자료는 지금으로부터 15년까지의 재정 안정화 방안만 얘기한 거다. 아직 기금소진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소진 이후부터 부담이 커진다. 두 길이 지금은 약간의 차이인데 계속 걸어가면 점점 차이가 난다.

정: ‘가’ 안은 급여 관련 부분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명확한 이야기를 내던진 거다. 소득대체율은 45%에서 더 이상 인하는 없고 보험료를 올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국민들께 선언하는 거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정: 국민연금으로 현 세대 노인 빈곤을 대응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국민연금의 방향성을 이야기하는데 기초연금 등 ‘다른 제도가 있으니까’라고 얘기하기에는 그쪽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우선 국민연금의 정확한 방향성을 잡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이미 법제화돼 있으니 다층체계에서 논의하는 게 맞다. 10년 전에는 국민연금만 있었지만 이제 3층 체계가 됐다. 각각 제도적 특성이 다르다. 특히 기초연금은 재분배 효과가 크다. 다층체계에서 기초연금의 무게를 훨씬 더 강하게 얘기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사각지대가 많다.

오: 소득대체율을 올려 보장성이 높아지면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에 있어서 중심부가 더 많은 혜택을 본다.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이해가 있고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있다. 지금 급여인상론은 철저하게 현 세대 노동시장 중심의 시각에서 본거다. 주변부를 생각하고 후세대를 생각한다면 정의롭지 않다.

정: 국민연금은 노후소득의 대체목적이다. 소득의 평탄화라는 표현을 쓴다. 200만원을 벌었던 사람들은 소득대체율 40%이면 80만원이고, 100만원을 벌었으면 40만원이다. 40만원은 최저생계비도 안 된다. 기본적으로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이 있고, 국민연금제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장치는 충분한데 여러 이유로 안 들어오는 거다.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정부가 검토해야 할 주요 사안으로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 감액 폐지 ▦보험료 부과 소득 상한 상향 등이 제시됐다. 이 부분도 중요해 보인다.

오: 지급보장 명문화는 쟁점이 안됐어야 한다. 2013년에 국민연금법이 바뀌어서 사실상 지급보장이 명시됐다. 그런데 가입자단체들이 지급 보장을 법제화하라고 하니 마치 법제화가 안 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국가가 도망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해 불신을 부추겼다. 잘못된 프레임으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법제화를 못하면 연금개혁의 진도를 나갈 수 없다. 비생산적이고 나쁜 연금정치의 사례로 남을 거라고 본다.

정: 걱정스러운 건 지급보장 명문화를 하면 마치 가입자단체나, 국민이 보험료 안올려도 되겠다라고 말할까봐 의심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보험료 부과 소득 상한 상향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 국민연금 소득상한을 좀 올려서 전체적으로 보험료 기반을 높이자는 거다. 다만 상한이 오르면 보험료를 거두는 저수지는 커지지만, 가져가는 것도 많아져 연금 급여에는 악영향이 있다. 하지만 보험료도 함께 올려 파이를 키우다 보면 해결이 가능하다.

오: 더 내면 그만큼 지출이 많아 지니 길게 보면 마찬가지다. 내는 거에 비해 두 배를 받아 가기 때문에 길게 보면 재정의 부정적 측면은 더 커진다. 보험료는 전반전에 발생하고 후반전에는 받기만 하기 때문에 시차적으로 재정에서 굴곡이 발생한다. 보험료 상한을 높이되 급여에서는 일정 제한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낸 것보다 적게 돌려 받는 특례 규정이 들어가야 한다.

-의료보험처럼 되는 건가.

오: 그렇다. 그런 부담 때문에 지금까지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건데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상한을 높여야 한다고 얘기한다. 상한을 높이고 급여에는 제한을 두는 방식의 개혁이 필요하다. 상위 계층 가입자들이 대승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정: 급여 제한을 두기가 사실 애매하다. 최고 소득자도 급여가 150만 원을 넘기기 힘들다. 연금을 5년 동안 미뤄서 받는 사람들이나 200만원을 겨우 넘지,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가입해도 120~130만 원을 못 넘는다.

-어쨌거나 보험료율을 언젠가 올려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하는건가.

오: 아니다. 지금 ‘가’안에서는 현행 40%체제 내에서는 15년 동안 보험료 인상을 건드리지 않는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것만 얘기한다. 좀 더 보험료를 세게 올리는 방안으로 가야지 지금 ‘가’안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

정: 제도에 대한 생각이 다른 거다.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은 지금 현재 45%인 게 매년 0.5%씩 낮아져 40%까지 낮아진다. ‘가’ 안은 이걸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뒤집겠다는 거다. 이제 와서 갑자기 철저하게 수지균형을 맞춰가는 제도, 완전적립 방식의 제도로 만들어간다고 얘기하는 게 당황스럽다.

-그렇다면 결국 추가로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 부가방식 전환을 얘기하는 건데, 2100년 이전에 한국에서 이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 보험료를 하나도 안 올리면 2057년 소진이다. 지금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어느 시점에 팍 고꾸라지는 걸 방치할 수 없다.

정: 보험료를 올린다고 전제해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장수할 거다. 60세부터 보험료를 또 내거나 장수하는 거에 따라 급여를 깎아야 한다. 그렇지만 ‘가’ 안의 기본가치는 급여는 더 이상 깎지 않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장수한다는 게 개인의 위험인가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인가. 사회가 받아들여야 하고 재정 투입을 해 줘야 한다.

-토론회에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정치인 출신인데 2년 뒤에 총선에 나갈 사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인이 국민연금 책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오: 민감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연금공단 이사장은 청렴하고’ 같은 내용이 있다. 초유의 일이다. 삼성물산 합병사건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굳이 선택한다면 비정치인이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정: 문형표 전 이사장이 워낙 기금의 독립성을 이야기하던 분이다. 본인의 신념을 넘어설 만큼 압박이 있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압박을 견딜 수 있는 강단의 문제다. 우리가 고민할 건 기금 부분에서 얼마만큼 독립적이냐는 거다.

인터뷰=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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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사회학 박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 실장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 공동대표

정해식 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

▦사회복지학 박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연구센터장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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