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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제개혁 있는 포용국가

입력
2018.09.20 11:00
수정
2018.09.20 17:3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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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가 어려움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사회정책을 국가운영 전략 차원에서 검토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성장을 통해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보수정부의 처참한 실패를 생각하면, 문재인 정부가 민생을 챙기는 사회정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번 포용국가 비전과 전략은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다만 민생을 챙기는 사회정책이 독립적 위상을 갖는다는 것이 사회정책이 경제체제의 개혁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생을 살리는 사회정책은 반드시 민생을 살리는 경제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경제개혁과 무관한 사회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사회정책이 서유럽 복지국가에 비해 지체되었다고 평가한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복지 지출은 경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GDP 규모가 11위에 달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는데도 2016년 기준으로 GDP 대비 복지 지출은 10.4%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의 복지 지출은 서유럽 국가의 경우 이미 50년 전에 달성했고, 일본도 40년 전에 도달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복지 지출은 뒤처져도 너무나 뒤처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처진 한국의 복지는 지출을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뒤처진 복지 수준은 삐뚤어진 한국 경제의 모습에 적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이 어떻게 성장을 했는지. 한국 경제는 국민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쓸어 모아 재벌 대기업에 몰아주고, 재벌 대기업은 국민의 피 땀이 베인 그 돈으로 외국에서 생산설비와 중간부품을 구입해 조립·가공한 물건을 되팔아서 성장했다.

재벌 대기업은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숙련을 높여 질 높은 수출상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은 가능하면 ‘귀찮게’ 인간적 대접을 해 줘야 하는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자동화 기계를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이 한국이 걸어왔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길이었다. 또한 재벌 대기업은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 길 대신 필요한 부품과 생산설비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길을 선택하거나 중소기업을 쥐어짜며 성장했다. 재벌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의 성장과 대부분 무관했던 이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는 중소기업과 무관한 재벌 대기업이 자동화된 생산 장비를 사용해 상품을 만들고 수출해 성장하는 나라에서 국가가 보호해야 할 노동자가 누구이었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대기업에서 자동화된 생산기계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소수의 노동자였다. 그러니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정책의 대부분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등 정작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배제되었던 것이다. 기업복지,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경제가 필요했던 복지정책은 이렇게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한국경제가 수출에 의존하면 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 강화되었다. 실제로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95.9%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32.5%에 불과했다. 그러니 뒤처진 사회정책을 개혁하려면, 재벌 대기업이 중심이 되는 수출주도형 성장체제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노동자가 소수의 대기업 노동자가 아닌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 이웃이 될 때 문재인 정부가 이야기하는 포용국가는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외된 사람들이 살만한 포용국가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제개혁과 함께하는 포용국가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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