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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모두 적대행위 금지구역 설정…사실상 불가침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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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모두 적대행위 금지구역 설정…사실상 불가침 선언

입력
2018.09.19 18:58
수정
2018.09.19 22:5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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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적대행위를 금지시킨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내놓았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이날 백화원 영빈관에서 합의서에 서명했다. 전방지역 땅과 바다, 하늘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지한 4ㆍ27 판문점선언을 추동하는 형태다. 따라서 합의서에는 남북 간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들이 총망라됐다.

비무장지대(DMZ) 내 모든 감시초소(GP) 철수에 합의하고 이를 위해 11개 GP를 올해 안으로 철수키로 했다. 또 바다 위의 화약고로 불려온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과 전방 지역 상공에도 군사적 완충 구역을 설치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도출 이후 남북은 군사적 신뢰 조성을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왔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군사 합의를 도출한 적은 없었다.

■올해 안으로 남북 각각 11개 GP 철수

우발적 군사 충돌로 인한 전쟁 발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시도는 지상 영역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MDL 기준 남북으로 10km 폭의 완충지대를 만들어 포 사격 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뒤 MDL 지역에서 발생한 총ㆍ포격 도발은 96회에 달한다. 이 합의는 양측의 사격 훈련 실시 때문에 군사적 긴장감이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 교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야외기동훈련은 주로 MDL 5km 외부에 있는 부대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 군의 대북 군사적 대비태세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남북은 특히 군 당국이 최근 공언해온 대로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남북 각각 11개의 GP를 12월 말까지 철수키로 했다. 정전협정에 따라 DMZ에는 원래 병력과 화기를 둘 수 없다. 그러나 군사 대치 심화로 남북은 경쟁적으로 설치해왔고 그 결과 현재 DMZ에는 남북 각각 70여개와 150여개의 GP가 자리하고 있다. 결국 이번 합의는 정전협정 준수 차원에서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비무장화’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국방부 군비통제 차장을 지낸 문상균 예비역 육군 준장은 “정전협정을 복원해 평화를 구현한다는 양측의 뜻이 모아진 것”이라며 “군축개념에서 봤을 때도 실질적인 군비통제가 실현되기 시작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반면 형평성이 어긋나는 합의란 지적도 나온다. 북한 GP가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점에서 양측이 같은 숫자의 GP를 철수시키면 결국 우리 군이 손해를 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 군의 경우 일반전초(GOP)에 3중 철조망과 과학화 감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GP를 동시적으로 철수할 경우 오히려 군사적으로 불안해지는 쪽은 감시체계가 약한 북한군”이라고 말했다.

남북은 JSA 비무장화와 JSA내 상호 간 자유로운 왕래에도 합의했다. 유엔군과 북한군이 MDL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 갔던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전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경계병의 권총 무장을 해제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JSA 경비 근무는 양측 각각 35명 이하의 비무장 병력으로 제한했다. JSA 내에서만큼은 사실상 MDL이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함정 포문은 닫고, 남북 공동 해상순찰

바다와 하늘에도 각각 지리ㆍ군사적 특성에 맞게 적대행위 금지 구역이 설정됐다. 서해 남측 덕적도로부터 북측 초도, 동해 남측 속초로부터 북측 통천까지 80~135km 해역을 완충수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완충수역에서는 포병과 함포 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을 할 수 없다. 또 해군 함정의 포구와 포신을 덮개로 가리고, 해안포의 포문도 폐쇄키로 했다.

남북은 또 NLL 일대의 ‘평화수역 및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두고 공동어로구역 보호를 위해 남북 해경정 간 공동 순찰도 실시키로 했다. 비무장 남북공동순찰대를 조직해 중국 어선 등 불법 조업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해상에서의 공동순찰을 하려면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서 양측이 만나야 한다. 결국 해상에서 남북 간 신뢰구축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국방부는 이날 합의에 따른 별도 설명 자료에서 실제 거리가 135km인 덕적도~초도 간 거리를 80km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남측 완충수역을 축소하기 위해 고의로 틀린 거리를 설명자료에 넣은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료를 만든 실무자가 해당 해역에 배치된 해안포 등 특정 시설을 기준으로 계산한 거리를 덕적도~초도 간 거리로 착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북은 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비행금지구역도 설정했다. 고정익 항공기(전투기 등)는 MDL을 기준으로 동부 40kmㆍ서부 20km, 회전익 항공기(헬리콥터)는 10km 폭이다. 무인기의 경우 MDL 기준 동부 15kmㆍ서부 10km, 기구는 25km가 비행금지구역이다.

교전 절차도 통일했다. 지상과 해상에선 경고방송→2차 경고방송→경고사격→2차 경고사격→군사 조치로 이어지는 5단계로, 공중에선 경고 교신 및 신호 →차단비행→경고사격→군사적 조치에 이르는 4단계 절차에 합의했다. 남북 간 우발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합의를 통해 사실상 초보적 단계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남북이 사실상 불가침 합의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고도 했다. 전쟁을 벌일 의사가 없다는 남북 간 의지가 이번 합의에 담겼다는 뜻이다.

■한강하구ㆍ해주 직항로 열린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에 대한 계획도 합의서에서 공개됐다. 한강하구를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해 남북간 공동 수로 조사를 실시하고 민간선박의 이용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공동이용수역은 남측의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에서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 북측의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에서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 길이 70㎞, 면적 280㎢에 이르는 수역으로 설정됐다. 남북은 2007년 정상회담서 이미 한강 하구 공동 이용에 합의하고 골재채취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실천되진 못했다.

남북은 또 남북 간 왕래와 접촉 활성화를 위해 북측 선박들의 해주 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을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2004년 5월 체결된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북측 선박이 제주해협을 비롯한 우리측 해상교통로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5ㆍ24 조치로 이용이 차단되어 왔다.

공동유해발굴 사업에도 합의했다. 우선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올해 안으로 지뢰와 폭발물 제거를 시작한다. 또 12m 폭의 도로를 개설해 내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 유해발굴을 진행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처럼 방대한 양의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선 군사공동위원회 개최가 빠른 시일 내 뒤따라야 한다. 이번 합의에서 남북 군사공동위를 조속히 가동한다고 했으나, 아직 공동위 구성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마무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1991년 말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를 통해 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키로 합의한 바 있으나 제대로 가동되지는 못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ㆍ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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