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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혁명의 수단이자 도구… 여전히 다루고 싶은 주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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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혁명의 수단이자 도구… 여전히 다루고 싶은 주제 많아”

입력
2018.09.2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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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영화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DMZ다큐영화제 개막 맞아 방한 

페르난도 E. 솔라나스 감독은 “한국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정치 경제적으로 후퇴했다”며 “우리는 지금도 탈식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제공
페르난도 E. 솔라나스 감독은 “한국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동안 아르헨티나는 정치 경제적으로 후퇴했다”며 “우리는 지금도 탈식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제공

엄혹한 시대에 영화는 혁명의 수단이자 도구였다. 혁명으로 들끓던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제3영화’ 운동이 일었다. 미국 할리우드 중심 상업영화(제1영화)와 유럽 작가주의 예술영화(제2영화)를 배척하는 제3영화는 민중의 혁명의식을 고취시키고 지배계급과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도구로서의 영화를 의미한다. 제3영화를 제창한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E. 솔라나스(82) 감독은 1968년 다큐멘터리 영화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를 발표한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정치적 폭압과 투쟁을 담아낸 이 영화는 지하 상영으로 관객을 각성시켰고 파격적인 형식으로 라틴아메리카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80~1990년대 한국 영화 운동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 제작 50년을 맞아 솔라나스 감독이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를 찾았다. 1998년 영화 ‘구름’으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20년 만의 방한이다. 14일 경기 고양시 영화제 사무국에서 마주한 솔라나스 감독은 “이렇게 오랫동안 영화가 상영되고 높이 평가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한국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이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미소지었다.

4시간20분에 이르는 대작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는 1부 ‘신식민주의와 폭력’, 2부 ‘해방을 위한 행동’, 3부 ‘폭력과 해방’ 등 3부작으로 구성돼 있다. 마지막에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시신 사진을 3분간 실었다. 솔라나스 감독은 “당시 정권의 눈을 피해 숨어서 작업해야 해 지인들에게도 영화에 대해 언급할 수 없었다”며 “영화를 열린 결말로 끝낸 건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를 주려는 의도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억압에 마무리를 못한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는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정치적 폭력을 증언한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제공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는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정치적 폭력을 증언한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제공

당시엔 위험을 감수하고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곧 정치적 행위였다. 솔라나스 감독은 상영 도중 관객들의 논쟁을 유도하기도 했다. 상영관에는 항상 ‘모든 관객은 방관자이거나 배신자이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하는 의미”였다. 솔라나스 감독은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진국만 봐도 중산층 수준이 예전보다 확실히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이 특정 소수에 집중됐죠.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조금만 벗어나도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볼 수 있을 겁니다. 노동자 40%가 4대 보험 혜택에서 소외돼 있고, 정치 경제 문화 전 분야에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3영화의 가치는 중요합니다. 민중 해방과 혁명을 다룬다면, 장르가 코미디든 드라마든 애니메이션이든 모두 제3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19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프랑스로 떠난 솔라나스 감독은 망명 생활 도중 ‘탱고, 가르델의 망명’(1985) 등 극영화도 여럿 만들었다. 1988년에는 영화 ‘남쪽’으로 제41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1985년 귀국 이후 영화 작업을 계속해 오다 2007년 정치인으로 변신해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상원의원인 지금도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신작 다큐멘터리 ‘죽음을 경작하는 사람들’도 소개했다. 다국적 기업의 농법으로 인해 농약으로 오염되는 제3세계 농업 문제와 식량 제국주의를 다룬 작품이다.

고령임에도 영화에 대해 말하는 솔라나스 감독의 눈빛은 형형했다. 인터뷰는 예정된 40분을 훌쩍 넘겨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아직도 영화로 다루고 싶은 주제가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매번 부족함을 느낍니다. 젊은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들 때 천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등한시하죠. 좋은 소설과 시를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성장하는 것이죠. 저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영화를 계속 만들 생각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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