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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담벼락, 사시사철 지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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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담벼락, 사시사철 지린내

입력
2018.09.20 04:40
수정
2018.09.20 09:02
15면
0 0
[저작권 한국일보] 탑골공원 소변.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탑골공원 소변. 박구원 기자

“볼일 좀 보고 올게.”

지난 18일 오후 7시10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동쪽 종로17길. 공원 담벼락을 따라 삼삼오오 줄지어 앉아 소주와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는 무리 틈에서 중년남성이 느린 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그가 한치 망설임 없이 향한 곳은 탑골공원 동쪽 담벼락 앞 하수구. ‘가림막’ 역할을 해줄 주차 차량 한 대 없는 이곳에서 남성은 주변 시선에 아랑곳 않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일을 마친 남성이 바지를 추켜 올리고 술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엔 인근 포장마차에서 나온 남성 두 명이 그 자리에 나란히 섰다.

기자가 이날 오후 7시부터 한 시간을 지켜보는 동안 무려 19명이 같은 장소에서 거리낌없이 볼일을 봤다. 3분에 한 명 꼴이다. 땅바닥은 마를 새가 없고, 담벼락 아랫부분은 누렇게 물들었고, 악취는 공원 앞 대로까지 퍼졌다. ‘1919년 3월 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ㆍ1운동의 출발지,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곳’이라 1991년 문화재로 지정된 사적 제354호 탑골공원의 담벼락이 공동화장실(?)로 전락한 씁쓸한 모습이었다.

몰지각한 노상 방뇨의 이유로 개방화장실 부재가 꼽힌다. 공원 인근에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잔술집’과 포장마차가 많은데, 공원 내 개방화장실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1,000원에 술 한 잔을 파는 잔술집과 노상의 포장마차 취객들이 왕복 6분(600m)이나 걸리는 인근 종로3가 지하철역 화장실을 가는 대신 ‘모두가 하는 대로’ 핑계를 대며 노상 방뇨를 택한다는 것이다. 한 남성은 “가까운 건물 화장실은 가게 손님만 이용할 수 있다”라면서 “(노상 방뇨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이 없으니 어쩌겠냐”고 되물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탑골공원 삼일문 옆 구석이 노상방뇨로 인해 진하게 얼룩졌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탑골공원 삼일문 옆 구석이 노상방뇨로 인해 진하게 얼룩졌다. 이한호 기자

주변 시민들만 애꿎다. 인근 주민 정영일(31)씨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숨을 참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악취에 익숙해져서 체념하고 산다”고 말했다. 이날 인사동을 찾은 대학생 최인아(23)씨는 “악취가 심해 놀랐는데 오줌냄새인 줄은 몰랐다”라며 “다음엔 다른 길로 다녀야겠다”고 했다.

인근 파출소 경찰관은 “경범죄처벌법으로 벌금을 부과하면 어떤 이들은 ‘여기가 우리 화장실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등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라면서도 “다른 치안 수요도 많은데 이를 제쳐두고 노상 방뇨 단속만 우선할 수 없는 노릇이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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