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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 한복판에 아파트 웬말’ 쑥대밭 만든 완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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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 한복판에 아파트 웬말’ 쑥대밭 만든 완주군

입력
2018.09.19 15:07
수정
2018.09.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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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소양면 황운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앞에 모여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동네 한복판에 추진 중인 영세 임대아파트 건설에 반발해 ‘군수와 관련공무원, LH공사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운마을 아파트 사업 반대 투쟁위원회 제공
전북 완주군 소양면 황운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앞에 모여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동네 한복판에 추진 중인 영세 임대아파트 건설에 반발해 ‘군수와 관련공무원, LH공사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운마을 아파트 사업 반대 투쟁위원회 제공

“산골마을 한복판에 아파트가 웬 말 입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황운마을은 웃음이 사라졌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명절도 마음 놓고 쇨 수가 없는 상황이다. 완주군과 LH공사가 마을 한복판에 난데없이 영세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평화롭던 마을은 투쟁장소로 변했고 90대 어르신까지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주민들이 모여든 마을회관은 군수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성토장이 됐고 주민 반발은 최고조에 달했다.

완주군은 지난 2016년 9월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마을정비형 공공임대아파트 공모사업에 황운마을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2020년까지 총 사업비 116억원을 들여 마을 중심부지 8,316㎡에 80세대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29~42㎡로 비정규직근로자, 신혼부부,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등 우선 63세대, 일반 17세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에 이 같은 아파트를 짓는지 알 수 없었다. 완주군은 공모를 하기 전 주민 의사를 묻지 않았고 협의조차 없었다.

표용만 황운마을 아파트 사업 반대 투쟁위원장은 “삶의 터전이자 생명으로 알고 평생 일궈온 땅을 지역 주민에게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 부지를 정했다”며 “군에서 주민들도 모르게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동네 한복판에다 아파트를 짓겠다고 위력을 행사해 힘없는 산골마을 사람들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손도 다 놓고 모여서 오로지 건설을 막겠다는 생각뿐이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전혀 지켜지지 않은 데다 사업 추진 근거가 된 주민 여론이 엉터리라는 것이다. 표 위원장은 “마을 주민 동의를 위한 여론조사를 재 요구해도 완주군과 LH는 전혀 듣고 있지 않다”며 “두 기관에서 관권을 동원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주민들이 행정절차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편입되는 토지주나 주민들에 대한 생계대책도 전혀 없다”며 “도시계획을 바꿔서라도 마을 중심지역이 아닌 외곽의 다른 곳에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영세 소형 아파트가 들어서면 오히려 마을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며 “이곳 주민은 마당과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어 8평짜리 아파트가 필요하지도 입주할 주민도 없다”고 성토했다.

주민들은 박성일 완주군수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군수는 2년 전 사업이 확정되자 “마을정비라서 실질적으로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과 함께 계획단계부터 고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 군수는 최근 주민들이 요청한 면담을 수 차례 묵살했다. 주민 유모(70)씨는 “군수와 군청직원들이 주민을 속이고 합법으로 위장해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반대 서명운동과 국민감사청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업을 막아낼 것이며, 주민 갈등을 조장한 박 군수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완주군 관계자는 “사업공모 전 해당 마을에 대한 여론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이후 설명회나 공청회를 열어 충분히 설명을 했고 당시 찬성여론도 있어 사업을 추진했다”며 “다른 곳으로 사업 부지를 바꿀 경우 공모사업 자체가 취소된다. 마을 중심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야 입주민의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고 아파트 건립과 연계해 다양한 주민 소득사업이나 편의시설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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