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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크기의 섬 ‘페드라브랑카’… 선박 통항로로 각축

입력
2018.09.21 17:00
수정
2018.09.21 17:4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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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라브랑카의 등대. 로이터 연합뉴스
페드라브랑카의 등대.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처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주인을 가리기 위해 싸우는 지역이 있다. 바로 ‘페드라브랑카’ 영토 분쟁이다.

페드라브랑카(Pedra Branca)는 남중국해와 싱가포르해협 인근 무인도로 싱가포르에서는 동쪽 46㎞,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에서는 남쪽으로 14.3㎞ 떨어져 있다. 싱가포르는 이 섬을 ‘흰 바위’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페드라브랑카’로 지칭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풀라우 바투 푸테’라 부른다. 축구장 정도 크기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은 선박 통항로에 위치하기 때문에 양국의 소유권 경쟁이 치열하다.

실질적으로 싱가포르가 관할하고 있던 페드라브랑카는 1979년 말레이시아가 자국 영해에 ‘풀라우 바투 푸테’를 그린 지도를 출판하면서 논란이 됐다. 말레이시아는 1512년부터 이곳이 조호르 술탄국(말레이의 전신)의 고유 영토였음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페드라브랑카 인근 지역을 조호르 군주들이 다스렸다는 문서들도 상당수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무주지(無主地)였던 섬을 발견한 것이며,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영유권은 1847년에서 1851년 사이 영국 식민 정부가 등대를 세우면서 확립됐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은 바위가 많아 좌초 사고가 자주 발생했는데, 영국 동인도 회사가 안전 통항을 목적으로 페드라브랑카에 등대를 세워 관리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엔 자연스레 싱가포르가 승계권을 가졌다는 논리다.

사진=한국해양수산개발원
사진=한국해양수산개발원

치열한 공방은 28년 동안 이어졌다. 결국 두 나라는 2003년에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에 판결을 맡기기로 결정, 5년 뒤 섬의 영유권은 싱가포르에 있다는 공식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판결의 결정적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무관심’이었다. ICJ는 1844년까지 말레이시아의 영토였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후 싱가포르의 실효적 지배에 반박하지 않은 점, 싱가포르가 해난·조난 사고 등을 조사하며 주권 행사를 하는 동안 말레이시아 쪽에서 어떠한 문제제기도 없었다는 데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말레이시아는 식민 통치 시절 영국에서 중대한 문건이 발견됐다며 작년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러나 올해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재집권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93) 지난 5월 ICJ 재심 요청을 ‘재고’해 보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말레이∼싱가포르 고속철도(HSR) 사업을 취소했는데, 앞으로 싱가포르에 지급할 피해 보상금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HSR 사업 중단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ICJ 재심 요청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체결한 한일 어업협정과 관련, 외환위기 때문에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해 독도를 분쟁지역에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과 유사한 셈이다.

전근휘 인턴기자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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