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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보다 부동산업자 임대수입 보장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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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보다 부동산업자 임대수입 보장이 우선?

입력
2018.09.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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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인근 원룸업자 압력에 굴복, 기숙사 수용인원 감축 합의 물의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북구 경북대 대구캠퍼스 울타리에 임대업자들의 실력행사에 굴복해 기숙사 수용인원을 줄이겠다고 한 대학본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북구 경북대 대구캠퍼스 울타리에 임대업자들의 실력행사에 굴복해 기숙사 수용인원을 줄이겠다고 한 대학본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북구 경북대 대구캠퍼스 울타리에 임대업자들의 실력행사에 굴복해 기숙사 수용인원을 줄이겠다고 한 대학본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대구 북구 경북대 대구캠퍼스 울타리에 임대업자들의 실력행사에 굴복해 기숙사 수용인원을 줄이겠다고 한 대학본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2학기 개강과 함께 지역거점국립대학인 경북대가 들끓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총장을 성토하고 나섰다. 학생 1인 시위가 잇따르고, 캠퍼스 담벼락에는 한때 플래카드로 뒤덮였다. 학생 대표는 물론 교수회까지 잇따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서명운동에다 청와대국민청원까지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학생 편익 외면한 채 기숙사 332실 줄이기로 굴욕 합의

경북대는 8월 21일 대구 북구 산격ㆍ대현ㆍ복현동 일대 대구캠퍼스 주변 원룸업자들과 기숙사 규모를 줄이기로 밀실 합의했다. 지난해 7월부터 공사중인 BTL(Build Transfer Lease, 임대형 민간투자사업) 기숙사 수용인원을 당초 계획한 1,209명에서 100명, 기존 기숙사에서 232명 등 총 332명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장기 기숙사 확충안에 따라 검토해 온 3차 BTL기숙사 사업도 자제할 것을 합의했다. 원룸업자들이 지난 4월부터 기숙사 공사장 출입구를 막고 농성 하는 바람에 3개월 이상 공사가 중단되자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태옥(무소속) 의원의 중재로 굴욕적인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6ㆍ13지방선거 전 자유한국당 대변인 시절에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 발언으로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다.

이 같은 합의는 학생들의 권익을 철저하게 외면한 임대업자들을 위한, 임대업자에 의한, 임대업자의 합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합의 과정에 임대업자들은 학생들의 협상 참여 배제를 요구했고, 대학본부 측은 이를 수용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같은 합의 진행 사실 자체를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북대 총학생회가 회장단 지원자가 없어 비대위 체재로 운영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원룸 업자들의 반발로 기숙사 공사가 중단됐지만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일부 학생들만 1인 시위 등 산발적인 의사표시에 나섰을 뿐이다.

경북대 재학생과 주변 원룸업계에 따르면 학교 가까운 원룸의 경우 내부 시설 등에 따라 보증금 300만원에 월 30만~40만원에 이른다. 선호도가 높은 위치의 깨끗한 방은 40만원은 줘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기 가스 인터넷요금은 별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기숙사는 2인 1실 기준 한 학기당(약 4개월) 월 관리비(식대 별도)가 49만5,000원(재정기숙사)에서 55만6,000원(대구캠퍼스 민자기숙사 기준)으로 월 13만~14만원에 불과하다. 한 방을 둘이 써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수ㆍ학생, 1인시위ㆍ성명서발표ㆍ국민청원 등 거센 반발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들고 일어섰다. 1인 시위, 서명운동, 성명서 발표, 청와대국민청원 등이 전개되고 있다.

경북대교수회는 지난 20일 '경북대 기숙사 수용인원 감축 합의에 대한 교수회 입장'을 통해 "이번 합의는 총장이 경북대 이익에 반하는 권한을 행사한 것이므로 원천무효"라고 강조하고 ▦기숙사 수용인원 감축 ▦3차 BTL기숙사 신축 자제 및 감원에 관한 사항을 전면 무효임을 선언할 것을 촉구했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초래한 김상동 총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앞서 경북대 단과대학과 총동아리연합회 등 전교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 102명도 성명서를 발표, 기숙사 수용인원 감축을 규탄하고 교육부 권고 수용률 25% 달성을 위한 추가 기숙사 건립계획을 확정할 것을 촉구했다.

유례 없는 폭염 속에서도 지난 7월부터 일부 학생들은 학생들의 많이 다니는 경북대 북문 일대 등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학본부와 임대업자들간에 굴욕적 합의를 주선한 정태옥 의원을 다음 선거 때 표로 심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수백 명 임대업자들의 표보다 수천 명의 학생들만 주소를 북구 관내로 옮겨도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저작권 한국일보]경북대 2차 민자기숙사 공사 현장. 학교 인근 임대업자들의 공사장 점거농성으로 3개월여 공사가 중단됐다가 8월부터 재개됐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경북대 2차 민자기숙사 공사 현장. 학교 인근 임대업자들의 공사장 점거농성으로 3개월여 공사가 중단됐다가 8월부터 재개됐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수용률, 교육부 권고치 미달… 추가건설도 차질 우려

교육부는 기숙사 확보 규모를 재학생 25% 이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현재 경북대는 18.6% 수준으로 전국 국립대 중 최하위권이다. 현재 논란이 된 2차 민자기숙사가 예정대로 준공되면 수용률은 24%대로 올라가게 되지만 합의안대로 하면 22%로 주저앉는다. 25%가 되더라도 희망학생을 다 수용하기 어렵다. 약 2만2,000명의 학부 재학생 중 55% 정도가 대구 이외 지역에 주소를 두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학 측이 검토해 온 3차 민자기숙사 건립사업이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경북대에 따르면 시내 의대 기숙사를 포함한 전체 기숙사 수용 정원(대학원 포함)은 4,501명 중 국비와 교비로 지은 재정기숙사는 2,715명이고, 이 중 향토관 716명을 제외한 1,999명분이 지은 지 수십 년 된 노후 기숙사다. 이 중 상당수는 1980년대 초에 지어져 세탁실은 물론 샤워실 화장실까지 층별로 한 두 곳만 있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다. 이 때문에 4인 1실 등은 경쟁률이 정원에 미달하는 일도 생긴다. 대학본부 측은 열악한 시설 때문에 벌어진 정원미달 사태를 빌미로 수용인원을 줄이겠다고 나선 셈이다.

◇3차 민자기숙사 건립 후 노후 기숙사 리모델링이 순서

이에 대해 학생들은 현재 건설 중인 2차는 물론 3차 민자기숙사사업까지 완료한 이후에 기존의 노후 기숙사를 리모델링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 학생은 "관리비를 더 내더라도 1인 1실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전에 우선 희망자 전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부터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요즘은 대다수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방에서 혼자 생활한 경우가 많아 4인 1실은 물론 2인 1실도 불편해 한다. 기숙사는 또 오전 1~5시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출입이 제한되는 등 저렴한 반면 제약도 많다. 이 때문에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외부 원룸을 얻는 경우가 많다. 원룸 공실이 많은 것은 시장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임대사업에 뛰어든 투자자들의 책임이다"고 성토했다.

지역 대학 관계자는 "경북대가 원룸 업자들이 공사장 점거 등 실력행사에 나선 반면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학생 편익보다는 당장의 시끄러움을 잠재우려고 오판한 것 같다"며 "공실이 늘어 어려움을 겪게 된 일부 원룸업자들의 사정도 딱할 수 있지만, 기숙사 건립을 둘러싼 최종 판단 기준은 학생 입장에서 하는 게 정석"이라고 꼬집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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