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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펭귄의 고향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다

입력
2018.09.18 11:0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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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참 별난 새다. 짝짓기 철이 되면 여러 마리의 암컷이 한 마리의 수컷을 두고 경쟁하는 지상에서 몇 안 되는 생물 가운데 하나다. 추위와 도둑 갈매기의 공격으로 새끼를 잃으면 다른 어미의 새끼를 도둑질하려 든다. 새지만 몸은 무겁고 날개는 작아서 날지 못한다. 발목이 몸 안에 잠겨 있어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다행히 헤엄은 잘 친다. 물속에 들어가면 순간 시속 48km의 속력을 낼 수 있다. 덕분에 크릴새우, 물고기, 오징어 같은 물에 사는 동물들을 잡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날쌔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백상아리나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와 마찬가지로 펭귄도 시속 8km의 속력을 유지하며 유영한다. 단거리에서 시속 30km로 헤엄치는 마이클 펠프스는 물론이고 9월 16일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01분 39초의 기록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케냐의 엘리우드 키초케의 시속 21km에도 한참 못 미친다. 연비를 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몸집을 생각하면 대왕고래와 비교할 때 엄청 빠르게 헤엄치는 셈이다.

매년 겨우 1~3개의 알을 낳는데 강추위 속에서 부화시키고 양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날지 못하는 새로 분화한 지 6,500만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버티고 있는 까닭은 남극을 주서식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남극의 추운 바다에는 의외로 먹을 것이 풍부하고 천적이라고는 바다표범과 범고래 같은 해양 포유류가 전부다. 펭귄의 등은 어두운 색이지만 배는 하얀색이다. 펭귄이 바다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범고래와 바다표범에게는 흰 배만 보인다. 바다표범의 입장에서는 구분도 잘 되지 않는 날쌘 펭귄보다는 다른 먹이를 찾는 게 낫다.

남극은 생각처럼 춥기만 하지는 않다. 남극대륙에 딸린 섬 가운데는 여름에 17도까지 오르는 곳도 있다. 온몸을 촘촘하게 털로 덮고 있는 펭귄으로서는 열사병에 걸릴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더운 여름이 되면 펭귄들은 납작 엎드려 바람과 지면을 이용해 열을 식힌다.

펭귄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남극대륙이 떠오르지만 사실 오로지 남극에만 사는 펭귄은 황제펭귄 한 종뿐이다. 총 열여덟 종의 펭귄 중 열네 종은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남극대륙과 마주보고 있는 곳에도 서식한다. 적도 부근에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에도 세 종이나 산다. 이 가운데 한 종은 먹이를 찾아 때때로 적도를 넘어서 북반구까지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열여덟 종의 모든 펭귄 서식지는 남반구에 있다.

북반구에 있는 펭귄들은 모두 동물원에 산다. 보통 동물들은 야생 상태보다 동물원에서 더 오래 산다. 동물원에서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굶주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 상태에서는 20~50년이나 사는 펭귄이 동물원에서는 몇 년밖에 살지 못한다. 동물원의 펭귄은 자주 아프고 잘 죽는다. 펭귄은 면역 체계가 약하기 때문이다. 펭귄이 사는 남극대륙은 청정지역이다. 또 너무 추워서 병원균이 살 수 없어서 감기에 걸릴 기회도 없다. 그러니 펭귄에게 잘 갖춰진 면역체계가 있을 리가 없다. 이런 펭귄들을 동물원에 가둬둔다는 것은 군사들을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과 같다.

놀랍게도 펭귄의 고향은 남극이 아니라 북극이다. 펭귄은 원래 북극해와 북대서양에 살았다. 북극의 펭귄도 배의 깃털은 희고 머리에서 등까지의 깃털은 윤이 나는 흑색이었다. 연미복을 연상시키는 모습니다. 몸집이 크고 날개가 작아서 날지 못했다. 알을 1년에 하나만 낳았다. 영국과 프랑스 사람들은 이 새를 펭귄이라고 불렀다. 켈트어로 ‘흰 머리’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큰바다쇠오리라고 한다. 학명은 핀구이누스 임페니스(Pinguinus impennis)다.

사람들은 8세기부터 깃털과 지방을 얻기 위해 북극해의 펭귄을 사냥했다. 펭귄은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호기심을 가지고 사람에게 접근하다가 살해당했다. 수백만 마리에 이르던 수가 금세 줄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박물관에 전시한다는 명목으로 사냥했다. 결국 1844년 6월 3일 마지막 큰바다쇠오리가 사냥감이 되어 박제되었다.

한참 후에 유럽인들이 남극대륙에 와서 큰바다쇠오리와 닮은 새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남극의 새들을 펭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북극 펭귄 큰바다쇠오리와 남극 펭귄은 친척이 아니다. 큰바다쇠오리는 도요목 갈매기아목 바다쇠오리과에 속하고 펭귄은 펭귄목 펭귄과에 속한다. 인간은 북극해에서 펭귄을 멸종시키고서 남극에서 펭귄과 닮았지만 펭귄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를 발견하고서는 펭귄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박제를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명목으로 엄청나게 남획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박제는 전 세계에 78점에 불과하다. 통탄할 일이다. 그나마 우리는 최고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진짜 펭귄, 큰바다쇠오리의 박제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곶감의 고장 상주에 있는 낙동강생물자원관이 바로 그곳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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