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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9.18)

입력
2018.09.1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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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체이스 스미스는 미국 상ㆍ하원을 두루 거친 첫 여성이자, 매카시즘에 공개적으로 맞선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history.house.gov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는 미국 상ㆍ하원을 두루 거친 첫 여성이자, 매카시즘에 공개적으로 맞선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history.house.gov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Margaret Chase Smith, 1897~1995)는 미국 첫 여성 상ㆍ하원 의원이기도 하지만, 소신과 용기가 도드라진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같은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위스콘신 주)가 1950년 2월 9일 연설로 ‘빨갱이 사냥’의 시동을 건 지 불과 넉 달 뒤인 6월 1일, 바로 그 연단에 서서 ‘양심선언’이란 제목으로 매카시즘의 폐해를 고발하는 연설을 했다.

“미국적인 것을 고래고래 외치며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짓이야말로 미국적인 것의 근간의 원칙을 너무나 빈번히 훼손하곤 한다. 비판할 자유, 대중적이지 않은 신념을 지닐 자유, 저항할 자유, 독립적인 사상을 지닐 자유···.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 때문에, 그런 신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됐다는 것 때문에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권리, 시민으로서의 평판을 훼손당하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생겨서는 안 된다.” 그의 연설은 매카시에게 주눅 든 동료 의원들의 용기와 양심을 일깨우는 데는 역부족이었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명예와 정치의 위신을 지탱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고, 확고한 반공주의자였고, 강한 군대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하원의원 시절, 당론에 맞서가며 징집법안(Selective Service Act, 1940)을 지지했고, 지역구인 메인주 조선 노동자들의 표심을 거스르며 ‘스미스 코넬리 반파업 법안(1943)’에 찬성했다. 루스벨트의 뉴딜 법안의 적극 지지자로서, 공화당의 협력을 이끄는 데도 앞장섰다.

메인주 스코히건(Skowhegan)이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직해 교사와 전화교환수, 지역 신문(인디펜던트 리포터) 기자, 양모공장 매니저 등으로 일했고, 페미니스트로서 지역 여성 상공인클럽을 조직해 운영하기도 했다. 1930년 그가 일하던 신문사 사장이던 23년 연상의 클라이드 스미스(Clyde Smith)와 결혼, 스미스가 36년 하원선거에 당선된 뒤 그의 아내 겸 비서로 일했다. 40년 스미스가 심장마비로 숨지자 그가 대신 출마, 8년간 하원의원을 지냈고, 48년 9월 18일 상원의원으로 뽑혀 73년 1월까지 연임했다. 그는 여성 최초로 64년 공화당 대선 후보경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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