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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시도 전 93%가 주위에 ‘경고 신호’…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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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시도 전 93%가 주위에 ‘경고 신호’…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입력
2018.09.17 22:0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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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년 9월 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자살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국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25.6명이 자살해 OECD 평균 2배에 해당한다. 하루 36명, 40분마다 1명씩 자살하는 셈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수보다 2.5배나 많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이 이토록 높을까. 일본은 10여년 전 자살이 매년 3만명이 넘었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자살률이 30% 이상 줄어 10만명당 18.7명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아졌다. 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ㆍ사회적 노력의 결과이다.

자살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다. 일부 동물에서 자살과 비슷한 행동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는 현상은 인간만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 존재가치인 생명을 스스로 마감한다는 측면에서 자살은 최후로 선택하는 극단적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 왕따, 분노 폭발, 수치심, 죄책감, 충동적 행동, 정신질환 등 실로 다양한 요소가 자살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요소가 관련돼 있지만, 자살에 이르는 길목에는 많은 경우 우울감이 존재한다.

그것이 병적으로 심한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신의학에서는 대체로 자살자의 70% 정도가 우울증과 연관돼 있고, 20% 정도는 정신병과 관련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우울감을 느끼는 시기에 자살하려는 사람을 조기에 파악하고 우울증을 다뤄 줌으로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자살에 대해 많은 연구와 이론이 나왔지만, 복잡다단한 자살행위를 몇몇 이론과 설명만으로는 모두 알아낼 수 없다. 자살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목숨을 끊는지, 어떤 어려움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지 정확히 이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따라서, 자살자들을 잘 이해하고 또 다른 자살을 방지하려면 각각의 경우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리부검’이 필요한 이유이다.

국내에서도 2014년부터 보건복지부 산하의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운영되면서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살한 사람의 상황을 유족들과 면담해 자살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다양한 요인과 전반적인 삶을 살펴보아 자살하게 된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살예방전략수립 근거를 마련하고 자살예방정책 수립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발표한 심리부검 결과를 보면, 자살자의 93.4%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주위에 경고신호를 보낸다.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하지는 않을지라도, 수면이나 식욕 변화, 체중변화, 과도한 음주나 흡연, 재산이나 주변 정리, 감정 변화로 인한 잦은 눈물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를 알아 채지 못한다. 67% 정도는 사망 이후 에야 알아 차리고, 심지어 14%는 그런 신호가 있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한편 최근에는 자살 원인과 더불어 생물학적 측면에서 그 지표자를 찾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이 활발하다.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 있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 축)의 기능 부조화가 자살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HPA 축은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뇌의 신경내분비계 시스템이다. 이 부위는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상처를 회복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작동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이 시스템의 기능 작동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뇌의 신경 염증수치,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뇌 가소성 등이 HPA축 기능에 영향을 준다고 하니, 평소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는 훈련도 도움이 된다.

자살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고 우리 모두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일 수 있다. ‘자살은 예방 가능하다’. 자살 징후를 보이는 주위 사람에게 좀 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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