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가민 공동창업자 게리 버렐 & 민 카오

가민(Garmin)은 영문 표기가 없으면 한자어 같은 발음 때문에 간혹 한국 기업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미국 기업이다. 우리 말로는 위성항법장치라고 부르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기들이 가민의 주 종목이다.

한국에 공식 진출한 것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가민 스마트워치 ‘포러너(Forerunner)’나 사이클링 컴퓨터 ‘엣지(Edge)’ 시리즈 등이 낯설지 않다.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거나 항공기를 좀 아는 이들에게도 가민은 매우 친숙한 회사다. 한때 내비게이션 시장을 제패했고 항공기 조종석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GPS 시스템 세계 시장 점유율도 1위이기 때문이다.

가민이란 사명은 공동창업자 게리 버렐(Gary Burrell)과 민 카오(Min Kao) 이름 앞 글자의 조합이다. 휴대용 GPS 기기를 꿈꿨던 두 남자는 가민을 세계 최고 수준의 GPS 기업으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GPS 산업의 개척자

가민코리아에 따르면 게리 버렐(81)과 민 카오(69)는 가민 창업 직전 항공장비 회사 킹라디오(King Radio)에서 근무했던 직장 동료다. 1937년 미국 캔자스주 스틸웰에서 태어난 게리 버렐은 캔자스 위치토주립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뉴욕주 트로이의 렌셀러폴리텍대에서 석사를 받았다.

대만 난터우현 주산이 고향인 민 카오는 1949년생이다. 대만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테네시대에서 장학생으로 석ㆍ박사를 마쳤다. 띠동갑이지만 두 남자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뛰어난 엔지니어인데다 ‘GPS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 공통점이 있었다.

1970년대 미 국방부가 정밀폭격 등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한 GPS 기술은 1984년 민간에 개방됐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GPS 시장은 미래 유망산업으로 떠올랐다. 게리와 민은 회사에서 GPS 장비를 개발하려 했지만, 킹라디오가 1985년 앨리드 시그널(Allied Signal)에 인수되며 계획이 꼬였다. GPS 기술에 관심이 없었던 새 회사가 관련 예산을 점점 삭감하자 둘은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1989년 10월 가민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작은 사무실에 접이식 의자 두 개와 카드게임용 테이블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들의 창업 소식을 들은 이전 회사 동료들이 잇따라 합류했고, 지인들은 직접 투자를 하거나 더 큰 투자자를 소개해줬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4만 달러가 금세 모였다. 먼 훗날 민 카오는 “우리의 인생을 뒤바꾼 날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선통신을 활용한 항공기용 통합 내비게이션 시스템 개발 경험이 있었던 두 사람은 소형 민간 항공기와 선박을 위한 GPS 내비게이션을 만들었다. 이어 산악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GPS 기기를 생산하며 휴대용 GPS 기기 시대를 개척했다.

걸프전의 스타로 부상

가민이 GPS 기기의 명가(名家)로 발돋움한 결정적인 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1991년 발발한 걸프전에 참전한 일부 미군들이 기존 군사용 GPS 기기 대신에 가민 제품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전장에서 정확한 위치 파악은 군인의 생명을 좌우하는데, 보급품보다 자비를 주고 사온 가민 제품이 더 정확하다고 입소문이 났다. 걸프전 이후 미 국방부는 가민의 든든한 고객이 됐다.

미 국방부가 GPS 기술을 인정하면서 가민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설립한 지 5년 남짓 된 1995년에 연간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연 순이익은 2,300만 달러에 달했다. 순이익율이 20%가 훌쩍 넘는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게리와 민은 1990년대 후반 GPS 기술에 디지털 지도를 결합해 차량용 내비게이션 시장에 진출했다. 1997년 미국 시장에 첫 번째 내비게이션 제품을 선보였다. 곧바로 시장 1위 자리를 꿰차며 전성기를 열었다.

2000년에는 내비게이션 제품을 50종으로 늘렸고, 전 세계 100여 국가에서 300만대가 넘는 GPS 기기를 판매했다. 불과 5년 만에 매출은 3억5,000만 달러로 세 배가 뛰었다. 순이익률은 30%를 돌파했다.

가민은 2000년 미국 장외 주식시장(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당시 미국 재계에서는 “닷컴 버블이 사라진 이후 ‘최고의 기술 기업’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가민의 GPS 시스템이 탑재된 항공기 조종석. 가민 홈페이지 캡처
웨어러블 시장에 도전

게리와 민은 임직원들에게 “가민은 가장 힘든 것에 도전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들이 언급한 가장 힘든 것의 범주에는 당시로서는 불가능이었던 착용형(웨어러블) GPS 기기도 포함됐을 것이다. 가민 창업 때부터 웨어러블 시장 진출은 게리와 민의 원대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도 책 한 권 크기의 GPS 기기를 만들기조차 어려웠다. 시계처럼 차고 다니는 웨어러블 GPS 기기는 그야말로 꿈에 가까웠다.

게리 버렐은 65세가 된 2002년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최고경영자(CEO) 민 카오는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2003년 첫 번째 웨어러블 기기 ‘포러너 101’을 세상에 선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손목에 차는 방식이라 웨어러블이 맞지만, 손목에 차기에는 부담스럽게 큰 크기가 문제였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래도 달리기 마니아들이 GPS 기술로 정확히 거리를 측정하는 기능 등에 높은 관심을 보여 가민으로서는 웨어러블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3년을 더 개발한 끝에 2006년 완성한 ‘포러너 205’는 일반 손목시계 형태의 스마트워치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걸음 수 측정 등 간단한 기능의 저가형 제품과 달리 GPS 기술에 기반한 고급 기능을 대거 넣었고, 사용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가민 커넥트’ 등을 개설해 마니아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아이폰이란 강적의 등장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Statista)가 집계한 가민의 연간 경영실적을 보면 2008년 34억9,000만 달러로 정점을 찍은 매출은 이후 2년간 내리막길을 걷는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꾼 애플 아이폰의 출현이 이유였다.

2007년 세상에 나온 아이폰은 휴대폰이면서 GPS 기기였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가볍고 사용까지 편리했다. 아이폰과 함께 쏟아져 나온 구글지도 같은 응용소프트웨어(앱)도 가민 입장에선 무서운 상대였다.

스마트폰이 지구촌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차량용 내비게이션까지 대체해버렸다. 이 시기에 가민 시가총액은 최고점 대비 90%가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가민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가민은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싸이클용 엣지를 비롯해 액티비티 트래커 ‘비보’ 시리즈, 골프 전용 스마트워치, 멀티스포츠용 ‘피닉스’, 전문 다이버를 위한 ‘디센트’ 시리즈 등 고급 제품을 원하는 고객의 세밀한 요구까지 만족시키는 제품들을 완성했다.

가민 연 매출액은 2016년 다시 30억 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그 가운데 웨어러블 기기의 비중이 50%를 넘었다.

올 여름 국내에도 출시된 가민의 사이클링 컴퓨터 신제품 '엣지520 플러스'가 사이클에 부착돼 있다. 가민코리아 제공
||| 끝나지 않은 스마트폰과의 대결

현재 가민 미국 본사를 비롯해 전 세계 30개국 60여 지점에서는 1만2,0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GPS 기기 누적 판매량은 1억6,100만대에 이르고, 항공기와 보트용 GPS 기기 점유율은 한번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가민 커넥트의 전 세계 누적 사용자는 3,000만명 규모다.

엔지니어 출신인 민 카오는 앞서 경영에서 손을 뗀 게리 버렐과 마찬가지로 외부 노출보다는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2012년 CEO에서 물러난 민 카오는 가민 회장이 됐고, 이사회 멤버 자리를 유지하며 경영에 조언하고 있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한 민 카오는 미래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열심이다. 자신이 세운 ‘카오 패밀리 재단’은 가민 이름으로 미국 9개 주의 9개 대학에 매년 장학금을 지원한다. 게리 버렐은 2014년 무기명으로 1,400만 달러 상당의 가민 주식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공동창업자 두 명이 일선에서 떠났어도 가민의 아성을 위협하는 스마트폰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힘든 것에 도전한다’는 이들의 창업 정신은 이제 후배들의 과제가 됐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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