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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트럼프의 제재는 이란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입력
2018.09.16 18:2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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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가 공식적으로 시행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트위터에 띄운 글이다. 그가 이란과 서방국가들이 맺은 핵 합의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지 3개월이 지났다. 이란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은 2015년 7월 이란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독일 등 주요 6개국(P5+1)과 맺은 협정이다. 트럼프는 JCPOA의 죽음을 알리듯 ‘지금까지 부과된 가장 혹독한 제재’의 귀환을 자랑했다.

트럼프의 발표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이란 핵 협상을 주도했던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차관은 “JCPOA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책략이 아닌 이란의 협정 위반일 것이라고 항상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JCPOA의 다른 당사국 사이에선 실망감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그 지도자들은 곧바로 핵 합의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관리들은 이란의 핵 야욕을 억제하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며 지역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를 되풀이했다. 미국의 목표는 이란의 석유 수출량을 제로(0)까지 줄이는 것이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의 길고도 잔인한 역사를 감안할 때, 이번의 제재가 이란의 정권교체에 더 효과적일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무시할만한 수준으로 감소한 것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이란 총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해 영국이 석유 수출을 봉쇄, 이란의 석유산업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영국은 모사데그 총리를 쫓아낸 쿠데타를 지원하고 팔레비 왕정을 복원시켰다.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반세기가 지난 2000년에야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한 쿠데타가 이란의 정치 발전을 후퇴시켰으며 많은 이란인들이 미국의 개입에 분노하는 이유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런 양심의 가책도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막지는 못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010~2015년 이란에 부과한 제제는 엇갈린 결과를 낳았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제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묘사한 포괄적인 조치들은 이란의 석유 수출량을 3분의 2나 줄여 하루 100만 배럴 밑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해 2012년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이 거의 6% 감소했다. 다음 해에는 물가가 35%나 치솟아 이란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광범위한 민간 부문의 실패와 실업 증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제재의 주요 목표와는 달리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는 강화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서방국가들이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집었다. 미국의 제재는 유엔안보리 결의가 뒷받침되지 않아 국제적인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 중국과 터키 같은 이란의 주요 무역 상대국은 이미 ‘합법적인’ 제재만 준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의 고립이 훨씬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법이 아닌 제재의 실질적인 위상이 그 효력을 결정할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이 미국의 제재 조치에 적극 동참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유럽 기업들은 여러 리스크를 고려해 이란 진출을 꺼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의 몇몇 대기업이 이란 시장에서 철수를 발표했다. 상호 연결된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 항공사, 에너지 회사, 은행 등이 미국 재무부의 분노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는 제재의 궁극적인 성공이 이란이 무엇을 하느냐 만큼이나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재가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란의 도시들은 수개월에 걸쳐 악화된 경제 상황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시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민들의 분노는 이란의 개혁주의자들을 약화시켰다. 이란의 통화인 리알화 가치는 급락했고 인플레이션의 망령이 돌아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초 올해 이란의 경제 성장률을 4.3%로 전망했지만, 미국 제재로 석유 수출이 감소하고 유럽 기업들이 탈출하면서 달성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관점에서 제재가 성공하려면 이란의 정권교체나 행동 변화가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제재는 정권교체를 달성하거나 협상된 합의의 행태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해 설득력이 빈약한 기록(쿠바, 미얀마,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를 생각해 보라)을 갖고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이 먼저 눈을 깜박이기를 기대하며 벼랑 끝으로 밀어 붙이는 트럼프 독트린을 이란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산 하키미안 런던대 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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