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환경서도 생명력 질긴 이끼
1만5000여종 중 국내 900여종 자생
솔이끼류ㆍ우산이끼류ㆍ뿔이끼류
생김새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

#화려한 꽃도 달콤한 열매도 없지만
작은 산새ㆍ애벌레 은신처가 되고
한약재ㆍ포장재로도 유용하게 쓰여
작고 조용한 생태계 숨은 보물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 지역에 이끼가 카펫을 펼쳐 놓은 것처럼 넓게 자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이끼처럼 조용히 살아라” 영화 이끼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끼는 야생화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으며, 과실수처럼 달콤한 열매를 맺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이끼는 진정한 뿌리가 물을 흡수해 기관으로 나르는 물관이나 잎에서 만든 양분을 곳곳에 전달하는 체관 같은 관속조직이 없어 ‘비관속식물’로 불립니다. 전 세계에 걸쳐 넓게 분포하며 다른 식물들이 생육할 수 없는 남극이나 북극의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갑니다. 이끼는 전세계에 1만5,000여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가운데 900여종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선태식물이라하며 솔이끼류, 우산이끼류, 뿔이끼류로 구분합니다.

제주도 현무암 바위 아래 살아가고 있는 방울우산대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자라는 환경도 이름도 다양한 이끼

솔이끼류, 우산이끼류, 뿔이끼류 모두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솔이끼류는 잎에 잎맥이 있으며 포자낭이 오랫동안 달리고, 잎이 모여 난 모습이 소나무 잎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산이끼류는 잎에 잎맥이 없으며, 세포 안에 유체라는 기름덩어리가 있고, 포자낭이 우산대처럼 생겼습니다. 뿔이끼류는 엽상체로 땅 위에 퍼지며 자라고 포자낭의 모양이 뿔기둥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솔이끼류 중에서는 특히 동물의 모습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이름들도 많습니다. 사자의 갈기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사자이끼, 포자낭의 모습이 두루미처럼 생긴 두루미이끼가 있습니다. 새의 깃털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도 있는데요, 봉황새의 깃털처럼 생겨서 붙여진 봉황이끼, 타조의 깃털을 닮아 붙여진 타조이끼입니다. 이외에 잎의 모양이 공작이 깃털을 쫙 폈을 때 모습인 공작이끼도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우산이끼류 가운데서는 지네가 지나가는 것처럼 생긴 지네이끼, 잎의 모양이 닭벼슬처럼 생겨서 붙여진 닭벼슬이끼, 잎의 갈라짐이 게발을 닮아 붙여진 게발이끼 등이 재미있는 이름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산에서 볼 수 있는 깃털나무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이끼는 종에 따라 자라는 생육환경이 다릅니다. 물을 좋아하는 물비늘이끼, 물가게발이끼, 망울이끼 등은 계곡 부 바위나 흙 위에 자라고, 촉촉한 습기를 좋아하는 둥근날개이끼, 들목걸이이끼, 은비늘이끼 등은 그늘진 바위 겉에, 건조한 지역을 좋아하는 지네이끼, 고깔바위이끼, 톳이끼 등은 햇볕이 잘 드는 바위나, 수목의 겉에 자랍니다.

특이하게도 강원도 정선, 영월의 동강 등지의 석회암 지역에만 자라는 이끼도 있는데요. 버섯우산이끼, 동강우산이끼, 어라연우산이끼, 조개우산이끼 등이 석회암 지역에 드물게 자라는 석회암 지표이끼입니다. 개구리밥처럼 이끼 중 유일하게 물위에 떠서 자라는 은행이끼라는 종도 있습니다. 습지나 저수지 가장자리에 개구리밥 옆에 숨어 있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은행잎 두 장을 포개놓은 것처럼 생겨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끼 중 유일한 외래식물인 반달우산대이끼는 화원의 온실 바닥 흙 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중해지역이 고향으로 세계 각지의 화원을 통해 퍼져서 살아가고 있지요. 포자체가 달리는 모습이 반달처럼 생겨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 있는 솔이끼류인 들솔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설악산 전석지대에 작은 무리를 이루며 서식하는 설악엄마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북방계 이끼

북방계 이끼는 주로 강원도 높은 산이나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나오는 풍혈지역 등지에서 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악산 능선부나 계곡부에 발달해 있는 전석지대(너덜지대)에 설악엄마이끼, 은비늘이끼, 둥근타래잎이끼, 흑조갈래잎이끼, 손바닥가는단풍이끼, 새깃통꼴이끼 등이 작은 무리를 이루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요. 사실 한반도 이끼 연구를 하면서 북방계 이끼를 관찰하고 연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말린주머니이끼, 가시닭벼슬이끼, 가는단풍이끼, 산말린이끼 등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주로 북한지역만 자란다고 합니다. 이 이끼들을 관찰하고 싶어 한반도 인근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이나 우수리지역, 사할린, 마가단 등지를 다니면서 북방계 이끼를 관찰했습니다. 북방계 이끼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나기 어렵지만 러시아 등 툰드라 지대에는 길바닥 잡초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영월 동강 석회암 지역에는 버섯우산이끼, 동강우산이끼, 어라연우산이끼, 조개우산이끼 등이 드물게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남방계 이끼는 주로 제주도 낮은 고도의 계곡이나 곶자왈에서 살아갑니다. 제주도의 주요 하천인 효돈천, 무수천, 탐라계곡, 돈내코계곡 등지에는 여인이끼, 제주뿔이끼, 방울우산대이끼, 탐라뿔이끼 등이 그늘진 현무암 바위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주도 효돈천 탐사 중에 우리나라 미기록종인 여인이기를 찾은 적 있습니다. 이 식물은 몇 해전 일본 가고시마 어느 계곡을 탐사하면서 크게 무리지어 자라는 것을 확인했던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라고 있으면 참 예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점점 따뜻해지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일본 난대림에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는 이끼들 중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있는 종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 지역의 이끼를 탐사하던 도중 만난 한 러시아 연구원이 물이끼 종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캄보디아와 툰드라에서 만난 이끼

열대우림의 이끼는 나무에 걸쳐져 축축 늘어져 자라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에서 이끼를 만나는 건 너무나 쉬워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날개이끼 종류 중 가장 큰 이끼는 3㎝ 정도이지만, 열대우림에서 만나는 날개이끼 종류들은 10㎝ 넘게 자랍니다. 우리나라의 뿔이끼 종류들은 모두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열대우림에는 나무에 붙어 자라는 뿔이끼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넓게 퍼져 자라는 지의류 같지만 포자가 맺히는 이끼종류입니다. 일본 남부지역에도 자라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입니다. 제주도 계곡부 조사를 다닐 때는 항상 나무 줄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따뜻해지는 기후 등의 영향으로 곧 우리나라에도 발견될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캄보디아 열대우림에서는 나무에 붙어 자라는 뿔이끼도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러시아 마가단 툰드라의 이끼는 카펫을 펼쳐 놓은 것처럼 넓게 자라고 있습니다. 주로 물이끼 종류들이 자라고 있는데, 색별로, 크기별로 종류들이 다릅니다. 마가단을 탐사하던 도중 만난 한 러시아 연구원은 작은 습지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여러 종의 물이끼를 관찰할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물이끼가 20여종이 자라고 있지만 산지에서 만나기란 어렵지요.

툰드라 조사 시에는 텐트를 배낭에 메고 일주일씩 조사를 나갑니다. 텐트를 설치한 바닥에는 우리나라 멸종위기종인 암매(돌매화)와 작은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암매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한라산 정상부에 극히 드물게 살아가는 멸종위기종입니다.

러시아에서 암매와 같이 살아가는 이끼라면 우리나라 한라산의 암매 주변에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백록담 조사를 갔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이끼가 우리나라 미기록종으로 확인된 백록담이끼입니다. 툰드라 지대에서는 푹신한 텐트바닥의 매트처럼 흔히 자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백록담 날카로운 바위의 틈새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드문 털귀이끼를 볼 수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서 이끼를 관찰하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이끼를 보고 싶다면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태백산에 가면 계곡부 초입부터 전석지대(너덜지대)에 나무이끼, 깃털나무이끼, 타조이끼, 큰엄마이끼 등 대형 이끼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끼 교육이나 탐사를 한다면 이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습지에 가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물이끼 종류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물이끼 종류들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최근 덕유산 인근 백두대간 능선부 습지에서 북한지역에만 보고되었던 잘린잎물이끼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물이끼 종류들을 만난다면 정말 행운일 겁니다. 가야산 정상부에 가면 세계적 멸종위기 취약종인 하늘이끼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야산정상부 절벽 틈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고 있지요. 보랏빛 식물체로 바위 사이에 눈에 잘 보입니다. 지리산은 산이 큰 만큼 이끼 종류도 다양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털이끼가 발견되었는데, 계곡부 폭포의 아주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리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드문 털귀이끼, 털가시잎이끼, 가시지네이끼, 주머니게발이끼 등이 자라고 있어 탐사 때마다 항상 즐겁습니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삿갓우산이끼. 국립생태원 제공
조용하게 살아가는 이끼의 역할

이끼를 관찰하려면 현미경으로 봐야 합니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작은 이끼 속에는 더 작은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끼의 잎 사이로 작은 애벌레들이 보입니다. 이끼의 잎은 이 작은 애벌레들의 은신처인 것입니다. 산속 계곡을 조사하다 보면 높은 바위에 이끼로 지은 작은 둥지가 있습니다. 작은 산새들이 이끼를 엮어서 집을 지은 것입니다. 이끼로 만든 집은 촘촘하고 질기며 통풍 또한 잘 돼 둥지의 좋은 재료입니다. 이끼는 한약재나 포장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우산이끼, 흰털이끼, 물이끼류 등을 한약재로 이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을 싸는 포장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끼는 작고 조용히 살아가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생태계가 원활히 돌아가게 도움을 줍니다.

최승세 국립생태원 자연환경조사팀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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