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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섬, 프랑스 지배 벗고 165년 만에 홀로서기 할까

입력
2018.09.14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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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칼레도니아의 독립을 염원하는 카낙인들의 새 국기(맨 왼쪽)가 기존 프랑스 국기(맨 오른쪽)와 함께 수도 누메아에서 펄럭이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뉴칼레도니아의 독립을 염원하는 카낙인들의 새 국기(맨 왼쪽)가 기존 프랑스 국기(맨 오른쪽)와 함께 수도 누메아에서 펄럭이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천국의 섬, 지상 낙원, 남태평양의 니스.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위치한 뉴칼레도니아를 일컫는 말이다. 크기는 경상북도보다 약간 작고 인구는 27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한낱 휴양지로만 알려졌던 이곳이 11월4일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서서히 들끓고 있다. 1853년 나폴레옹 3세의 통치가 시작된 이래 무려 165년 만이다.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을 내건 에마뉘엘 마크롱이 지난 5월 프랑스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만7,000여㎞ 떨어진 지구 반대편 뉴칼레도니아를 전격 방문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상당한 자치권 불구, 독립에 대한 갈증 여전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 가운데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식민지가 아니라 특별집합체(Special Collectivity)로 불린다. 국방, 외교, 사법관할권과 통화정책을 제외하면 완전한 자치권을 누린다. 원주민인 카낙인들의 오랜 투쟁이 거둔 값진 성과다.

원래 이곳은 프랑스 정치범 유배지였다. 외부인의 유입으로 인종갈등이 심해지자 1878년 카낙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무자비하게 진압돼 1,200여명이 숨졌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주민들이 프랑스 정부의 참전요청에 대한 대가로 자치권을 요구하며 다시 목소리가 커졌고, 1953년 최초의 정당 유니온 칼레도니엔을 결성했다.

1968년 파리 5월 혁명과 60년대 니켈 붐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다. 뉴칼레도니아는 관광수입을 빼면 사실상 니켈로 먹고 사는 나라다. 니켈 매장량이 전세계에서 두 번째, 생산량과 수출량은 세 번째로 많다. 지배국 프랑스의 혁명 열기에 눈을 떠 독립을 향한 불꽃이 튀었다면, 선대에서 물려받은 풍부한 니켈은 후손들의 열망에 불을 지필 든든한 땔감이었던 셈이다.

뉴칼레도니아 독립운동은 1980년대 전환점을 맞는다. 84년 카낙사회주의민족해방전선(KLNKS)을 조직해 부족을 통합하고 세력을 규합하며 틀을 갖췄다. 여세를 몰아 87년 예정된 투표를 거부하고 소요를 확산시켜 폭력투쟁을 주도했지만 88년 우베아 동굴 인질극이 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유혈 참사로 끝나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프랑스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동시에 카낙인들의 거센 저항에 놀라 당근을 제시하며 방향을 튼다. 이에 88년 마티뇽 협정을 맺고 뉴칼레도니아의 자치권을 대폭 확대했다. 급기야 10년 후인 98년에는 수도 누메아에서 재차 협정을 체결해 독립 결정권을 아예 주민들 손에 맡기기로 했다. 프랑스의 다른 해외 영토에서는 볼 수 없던 획기적인 조치다.

누메아 협정에 따른 첫 투표가 꼭 20년째인 올해 11월 치러진다. 분리 독립해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홀로서기에 나설지, 아니면 프랑스의 보호막에 남아 훗날을 기약할지 주민 스스로 정할 기회다. 독립의 염원을 담은 새로운 국기가 이미 시내 곳곳에서 펄럭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11월 독립 주민투표를 앞둔 뉴칼레도니아에서 독립에 반대하는 친 프랑스 계열 우익성향 정당 지지자들이 프랑스 국기를 내걸고 집회를 하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11월 독립 주민투표를 앞둔 뉴칼레도니아에서 독립에 반대하는 친 프랑스 계열 우익성향 정당 지지자들이 프랑스 국기를 내걸고 집회를 하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 뒤집기 노리는 독립세력 

“독립은 우리의 존엄이 걸린 문제다.”

뉴칼레도니아 독립 세력을 이끄는 다니엘 고아 KLNKS 의장은 7월 호주 방문 당시 연설에서 “무엇보다 프랑스에 맞선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를 끝낼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독립 이후의 청사진도 밝혔다. 그는 “새 국호는 카낙뉴칼레도니아로 정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완전한 주권을 보장받고 유엔에도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 착취에 기반한 프랑스식 시스템은 폐기해야 한다”면서 “다국적 기업이 이익을 챙겨가는 지하자원의 소유권을 되찾아 주민들에게 평등한 분배를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루빨리 독립해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독립에 반대하는 측은 “프랑스의 도움으로 상당수준 경제적 자립을 갖춘 뒤에 독립하는 게 순리”라며 맞서고 있다.

주민투표가 임박하면서 독립 찬반을 주도하는 뉴칼레도니아 정당들도 속속 진용을 갖췄다. 지난 6월 프랑스가 선거운동을 허용한 정당은 모두 5개로 독립 반대 정당 3개, 찬성 정당은 2개이다. 양측은 직전 선거인 2014년 총선 이후 전열이 흐트러지며 부침을 겪었다. 독립 반대 측은 59% 득표율로 과반을 확보하면서 기세를 올렸지만 장관직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고조돼 관계가 틀어졌고, KLNKS가 주도하는 독립 찬성 측은 당초 높은 응집력을 보이다가 선거 이후 역시 밥그릇 싸움으로 관계가 느슨해졌다.

최근 조사에서 독립 세력은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퀴드노비가 지난 4개월간 2,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4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69%가 독립에 반대해 4개월 전보다 11%포인트 올랐다. 반면 독립 찬성 응답은 15%에서 20%로 5%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인구 분포도 독립에 호의적이지 않다. 카낙인이 전체 인구의 45%로, 35% 수준인 유럽 이민자보다 많기는 하지만 찬반으로 나뉜 게 걸림돌이다. 6일 칼레도니아 방송 조사결과 자신이 카낙인이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독립 찬성은 47%로 집계됐다. 독립에 반대하는 29%보다 20%포인트 정도 많기는 해도 압도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따라서 유럽 이민자를 감안하면 수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다.

이에 독립 추진 세력은 정부가 교묘하게 독립 반대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며 불만이 크다. 가령, 1980년 독립 후 가난에 허덕이는 남태평양의 섬 바누아투에 빗대 주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한다는 것이다. 폴 니아우타인 카낙해방당 대표는 “주민들은 독립 찬성과 반대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대중매체가 오히려 독립 반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만만치 않게 흘러가자 KLNKS는 “주민투표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5월 프랑스 통수권자로는 처음으로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해 환영 나온 주민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5월 프랑스 통수권자로는 처음으로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해 환영 나온 주민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누메아=AFP 연합뉴스

 남아있는 기회, 분주해진 프랑스 

다만 올해 부결되더라도 승부가 끝난 게 아니다. 누메아 협정에 따라 2014년 이후 언제든 독립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독립 찬성 측은 2020년과 2023년을 다음 투표 시점으로 거론하고 있다. 고아 의장이 “독립은 시간 문제”라고 장담하면서도 “그런데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프랑스가 분주해졌다. 5월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날아가 “뉴칼레도니아가 얼마나 중요한 보석인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고 치켜세웠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6월 독립 찬반 양측을 만나 “투표를 앞두고 긴장과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만큼 대화채널을 계속 가동하자”고 거들었다. 뉴칼레도니아의 투표 결과에 따라 프랑스 본국 면적의 17%에 달하는 해외 영토 곳곳으로 자칫 도미노처럼 분리주의 열풍 이 확산될 수도 있는 탓이다.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매서운 공세도 프랑스에겐 큰 부담이다. 중국은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재정이 열악한 소규모 섬나라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부어 남태평양 공략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생력이 충분치 않아 여전히 프랑스의 재정지원을 받는 뉴칼레도니아 또한 어렵사리 독립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광풍에 휩쓸릴 우려가 적지 않다. 강대국간 패권경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처럼 11월 주민투표는 홀로서기에 도전한 뉴칼레도니아가 거쳐야 할 기나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다. 설령 첫 시도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탄력을 받아 독립 추진이 본궤도에 오른다면 이후 상황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당장은 기존 체제에 안주하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뉴칼레도니아의 돈줄인 니켈 생산 공장 일부가 최근 환경오염 때문에 문을 닫는 바람에 주민들이 동요하는 등 내부 불만요인도 적지 않다. 193번째 유엔 회원국 탄생에 청신호가 켜질지, 아니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무모함에 그칠지 전세계가 망망대해의 작은 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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