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쓰지 않는 것으로 권위를 세우던 뉴욕타임스가 익명 기고를 실었다. ’나는 트럼프 레지스탕스(저항군) 일원’이라고 밝힌 기고에서 익명의 고위 관리는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을 폭로, 백악관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일주일째 이어진 파장에 가려져 있긴 하나, 익명 기고는 언론윤리에서 벗어난 일이다. 기사 작성자가 익명이면 언론 포기와 다르지 않을 텐데, 익명 기고를 게재한 것은 신문 권위에 기댄 ‘용기’이거나 ‘배짱’에 가깝다.

▦ 미국 역사는 ‘익명’이 큰 축을 이루고 있긴 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디프 스로트(내부 제보자)’란 익명 보도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하야를 가져왔다. 멀리 건국의 아버지들은 ‘퍼블리우스(Publius)’라는 익명 논설로 독립을 위한 연방헌법 비준을 주도했다. 뉴욕타임스의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도 트럼프 정부와 내부자들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였다며, 익명 기고의 공익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부적합성 얘기는 ‘화염과 분노’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 이미 공개된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퀴니팩 여론조사에서는 익명 기고가 잘못이란 의견이 51%로 찬성(39%)보다 많았다. 익명 보도로 워터게이트를 터트린 밥 우드워드조차 자신이라면 익명 기고를 싣지 않았다고 깎아 내렸다. 해당 사건의 날짜와 시간, 참석자가 없어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갖추지 못했고, 고위 관리란 필자가 당사자인지 목격자인지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언론에게 가장 큰 유혹은 익명이다.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잘못 쓰면 불신의 칼로 돌아온다. 디지털 시대에 익명 기사는 뉴스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정보’로 취급된다. 우리 언론의 신뢰가 낮은 데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취재원이 ‘관계자’인 탓이 크다는 언론학자들의 지적도 이런 이유에서다.

▦ 뉴욕타임스의 익명 기고는 소프트 쿠데타, 헌법 위기 논란으로 번져 있다. 기고문의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 뒤에 멀쩡한 우리가 있다. 국민은 안심하시라”로 요약된다. 뒤집어 보면 미국을 움직이는 건 선출되지 않은 기성 권력인 ‘디프 스테이트’가 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가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다. 그러면 선출 권력인 트럼프 대통령의 편집광적 행동을 그들이 막는 게 민주주의일까, 기성 권력의 트럼프를 향한 쿠데타일까. 익명 기고 평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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