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전ㆍ현직 판사 줄소환

이민걸 등 피의자 신분 10여명 외
비공개로 소환 판사도 40명 안팎
檢, 영장기각에 저인망 수사 전환
개별 사건 모두 진술 확보 나서
윗선 조사 때까지 더 불려올 듯
“최종적 연루 판사 수십명 입건 땐
사법부 신뢰ㆍ시스템 붕괴 후폭풍”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전ㆍ현직 대법원 고위 법관뿐 아니라 관련된 중견 판사 수십명을 불러 조사하는 저인망식 수사를 펼치면서 전ㆍ현직 법관 수 십명이 무더기 입건 조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사안의 중대성에다 잇따른 영장 기각, 증거인멸 사태로 험악해진 분위기에서 검찰이 연루 법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사법처리에 나설지 여부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2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김현석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들 외에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나모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 최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정모 울산지법 부장판사 등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판사만 10여명이다.

여기에 공개 소환된 판사들 외에도 비공개 검찰 조사를 받고 간 연루 전ㆍ현직 판사도 4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으로 근무했던 전ㆍ현직 판사들과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했던 판사들, 일선 법원에서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 등에 보고한 데 관여한 판사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앞으로도 사법농단 핵심 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오기 전에 더 많은 판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이처럼 저인망 수사를 펼치는 이유로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등을 잇달아 기각하고 있는 점이 주요 요인이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확보할 수 없게 된 검찰이 의혹 사건을 일일이 들여다보면서 개별 사건마다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해 진술과 증거 등을 확보한 뒤 ‘윗선’ 수사로 이어가는 수사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면서 판사 뒷조사(블랙리스트)나 재판 개입 의혹 문건을 작성하거나, 재판거래와 관련한 일선 법원의 재판 내용을 보고한 판사들까지 모두 검찰 청사에 불려올 전망이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행정처나 대법원에 근무했던 판사들은 언제 (검찰에) 소환될 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사법농단 수사팀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판사를 모두 수사선상에 올려 놓고 사실관계 확인 후 최종 기소 단계에서 입건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언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셈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형 사건의 경우 고위급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지시를 받아 이행한 하급자들을 사법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검찰ㆍ법원 간에 고조된 긴장 상황에서 검찰이 개별 사건마다 책임을 묻기로 결정하면 일선 판사들도 어찌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대법원 기밀유출과 관련된 증거인멸 행위와 관련해 “법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거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이례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등 검찰 분위기는 상당히 강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검찰이 대부분 현직인 이들을 모두 피의자로 입건할 경우 사법부 신뢰 추락은 물론이고, 사법시스템에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법원행정처나 대법원에 근무한 판사들은 실력을 인정 받은 엘리트로, 대부분 법원 요직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피의자로 기소된 판사에게 재판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수사가 끝난 뒤에도 법원을 불신해 재판 결과를 수긍하지 않는 등 후폭풍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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