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시세표가 붙어 있다. 배우한 기자
9월 첫 주 서울 전셋값 0.08%↑
강북ㆍ동작구는 0.15~0.17% ↑
집주인들 계약 끝나자마자
“전셋값 올려달라” “집 비워라”
이사철 앞두고 애타는 실수요자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전용면적 80㎡ 아파트를 2억7,00만원에 전세 내서 부인과 살고 있는 석모(57)씨는 벌써 2주째 노원구는 물론이고 강북ㆍ중랑ㆍ성북구 등 주변 지역의 부동산 중개사무소까지 샅샅이 찾아다니고 있다. 갑작스레 새 전셋집을 구하는 중인데 도무지 매물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우 찾은 매물은 평형이 넓거나 가격이 비싸 감당할 수 없었다.

석씨 부부는 지금 사는 셋집에 만족했다. 지은 지 30년 넘은 중소형 아파트였지만 자녀들을 일찍 독립시킨 터라 둘이 살기 좁지 않았고, 연초엔 재건축 규제 조치 발표로 전셋값이 오히려 떨어지자 집주인이 먼저 "10월에 계약 끝나도 계속 사실 거죠"라고 물어와 계약 연장만 하면 되겠거니 했다. 상황은 8월 전후로 급변했다. 서울 도심 집값 폭등 여파가 노원구에 당도하면서 석씨가 사는 집의 매매가가 3억8,000만원에서 4억4,000만원으로 수직상승한 것이다. 집주인은 이 기회를 잡아 아파트를 팔았고, 새 주인은 석씨 부부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일방통보했다. 석씨는 “집값이 올라도 집주인만 돈을 벌고 세입자는 갈 곳도 정하기 어렵다”고 한숨지었다.

맞벌이를 하는 연모(34)씨도 한 달째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은평구 증산동 84㎡ 아파트에서 전세(보증금 3억5,000만원)를 살고 있는 연씨는 다음달 계약이 만료되면 집을 비워주기로 했는데, 지금 보증금으론 주변 어디에서도 살 곳을 구할 수 없다. 증산동 아파트는 두 달 새 모조리 5,000만원가량 전세금이 올랐고, 인근 마포ㆍ종로구는 접근도 힘들 만큼 비싸다. 연씨는 서울살이를 포기할 생각으로 경기 지역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둘러보고 있다.

서울 시내 전세 실수요자들이 ‘가격 상승’과 ‘매물 부족’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12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첫 주 서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08% 상승, 전주(8월 넷째주ㆍ0.09%)에 이어 0.1%에 가까운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규제책에 눌려 상반기 동안 0.3% 하락했던 서울 전셋값은 7월(월평균 0.05%) 반등하더니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폭을 높이고 있다.

특히 소형 아파트 물량이 많은 강북구의 전셋값은 이달 첫 주 0.15% 오르며 서울 평균보다 2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강북구 전셋값 상승률은 0.03%였다. 8ㆍ27 부동산 대책으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동작구도 정부 대응이 무색하게 0.17%의 높은 전셋값 상승률을 보였다. 실제 상도동의 84㎡ 아파트 전세는 한 달 새 3,000만원가량 올라 6억7,0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상도역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매물을 찾으니 전세가격이 안 오를 수가 없다”며 “어떻게든 ‘인 서울’하려는 사람이 있다 보니 높은 가격에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성사되긴 하지만, 대부분의 실수요자들은 껑충 뛴 가격을 확인하곤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전셋값 고공행진은 전반적 가격 수준을 보여주는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전세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값)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남권 전세 중위가격은 5억144만원으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4월 이후 처음 5억원을 넘었다. 강북권 전세 중위가격은 3억4,875만원이었다. 강남에선 5억원, 강북에선 3억4,000만원은 있어야 전세살이가 가능한 셈이다.

전세 매물 부족도 세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조건이다. 이달 1~12일 서울 전세 거래량은 3,786건으로, 숫자만 놓고 보면 9월 한 달 동안 1만186건의 전세가 거래됐던 지난해와 비슷한 흐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셋값 급등이 전세 인구의 원활한 이동을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올해부터 본격화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규제가 덜한 전세자금대출을 편법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사실상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내는 상황이다. 친지 명의를 빌려 허위 전세계약을 맺어 대출을 낸 뒤 주택구입 자금으로 삼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살이를 포기하는 세입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상반기 상반기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주한 인구는 18만6,993명이었고, 7월에도 9,401명이 서울을 떠났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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