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으로 노선 자체가 폐지되고 일반인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철도가 금강산전철이다. 금강산은 강원도 북부 통천 고성 회양 3개 군에 걸친 약 25만㎡ 산역을 일컫는다. 1만2천봉의 준령심곡과 기암괴석이 웅장하다. 해발 1,786m 비로봉을 중심으로 내금강은 여성미, 외금강은 남성미, 해금강은 야성미를 자랑한다. 영국인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1894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찬탄했다. 1914년 8월 경원선이 개통되자 금강산은 세계유수의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조선총독부는 절경을 담은 사진첩과 안내서를 발행하여 관광객을 유치했다. 서울주재 외교관이나 선교사는 금강산유람을 한국 근무 최상의 선물로 여겼다. 소설가 이광수는 1921년 8월 경성역에서 경원선을 타고 세포역에 내려 자동차로 장안사를 비롯해서 금강산을 유람하고, ‘천지창조를 목격했다’며, 벅찬 감동을 토로했다. 그의 기행문 ‘금강산 유기(遊記)’는 전에 없던 관광 붐을 일으켜, 금강산을 구경해야 명사대접을 받는 풍조까지 생겼다. 그렇지만 경원선만으로 금강산을 여행하는 일은 대단히 불편했다. 이에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가 관광산업에 뛰어들었다. 토건업자로서 경의선 호남선 부설에서 축재한 구메 다미노스케(久米民之助) 등은 1919년 12월 도쿄에서 공칭자본금 500만원, 납입자본금 50만원으로 이 회사를 창립했다. 한국인 송진헌 한상룡도 중역으로 참여한 이 회사는 금강산 일대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을 개발하고(1만4,000㎾), 그 전력을 이용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관광철도를 경영했다. 곧 1924년 8월 1일 표준궤로 철원-김화 29㎞를 개통한 이래 1931년 7월 1일까지 철원-내금강 117㎞를 잇달아 완공하고, 직류 1,500v로 객화열차를 운행했다. 1934년 4월에는 조선운송주식회사의 장안사-온정리 자동차 노선을 매수해 동해안 접근로를 확보했다. 철도연선에서 중석과 철광석 등도 채굴했다. 또 통천군 중대리발전소-철원-경성을 잇는 167㎞ 송전선을 가설하여 경성전기주식회사에 전력을 판매했다. 그리하여 금강산전철은 철도보다 전기에서, 여객보다 화물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금강산전철은 1930년대 객화 혼합편성 열차(정기 7편, 부정기 5편)를 운행했는데, 연간 전체 여객은 약 80만 명, 금강산유람객은 13만 명이었다. 성수기(5~10월)에는 경성역-내금강역에 직통 야간 침대열차(2,3등)와 2등 객차를, 절정기(10월)에는 매일 야간 직통 침대열차와 임시열차를 운행했다. 1935년 발착시각은 21:45 경성역 출발, 이튿날 06:04분 내금강역 도착, 07:40분 내금강역 출발, 14:15분 경성역 도착이었다. 1940년 경성역-내금강역 야간 직통 침대열차 왕복운임은 무박 2일 13원, 장안사 1박 3일 14원 50전이었다.

금강산전철은 부유층에 한정된 금강산관광을 서민과 학생으로 넓히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부수효과를 가져왔다. 대구사범학교 3학년생 박정희는 1935년 금강산수학여행 기념사진에, ‘금강산 1만2천봉, 너는 세계의 명산! 아! 네 몸은 아름답고 삼엄함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 다 같은 삼천리강산에 사는 우리들은 이 같이 헐벗었으니 과연 너에 대해서 머리를 들 수 없다. 금강산아, 우리도 분투해서 너와 함께 천하를 찬란하게…’라는 메모를 남겼다.

금강산전철은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에 밀려 1941년 7월 금강산관광을 중단했다. 이어 전력통합의 압박을 받고 1942년 1월 1일 경전(주)에 사업 일체를 매도했다. 경전(주)은 1944년 10월 1일 금강산전철 운행을 아예 중지하고, 창도-내금강 레일 56.1㎞(3,845톤)을 걷어 경부선 복선 등에 전용했다. 일제 패망의 단말마였다. 금강산전철 잔여구간도 해방 후 남북분단과 6ㆍ25전쟁으로 파괴 또는 철거되었다.

얼마 전까지 현대아산은 많은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며 해로를 우회하여 금강산관광을 운영했다. 남북 이산가족도 그렇게 만났다. 서울에서 내금강까지 직통열차가 운행된 사실에 비춰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이 서로 침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철도연결의 과실을 당장 따먹는 데는 금강산전철을 복구하여 활용하는 게 제일이다. 철도노선이 휴전선에 걸쳐있어 평화실현의 울림이 큰데다가, 연선에 가용자원이 풍부하고 당일치기 관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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