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양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장·여야 5당 대표 등 9명의 평양정상회담 초청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10일 오후 2시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예정에 없던 공지가 떴다. ‘2018 평양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정치 분야 초청 명단을 발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좀처럼 춘추관에 오지 않는 임 실장이 직접 나서는 만큼 중요한 발표일 것이란 기대가 컸다.

30분 뒤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선 임 실장은 문희상 국회의장, 여야 5당 대표 등 9명에게 “이번 정상회담에 꼭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정중하게 요청 드린다”며 초청 의사를 공개했다. 대통령 특별수행원이 아니라 ‘국회ㆍ정당 특별대표단’을 꾸려 입법부 독립성을 보장하고, 평양 체류 시 별도 일정을 북측과 협의하겠다고도 했다.

의외였다. 이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대통령과 함께 평양에 가지 않겠다고 공개한 상황에서 청와대의 발표는 느닷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국회의장실과 청와대 정무수석실 등을 통해 비공식적 의사 타진은 했다고 하나, 물밑 조율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같은 공식 초청 발표는 야당의 반발을 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없다는 핑계로 동행을 거절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당대표들이 지금 나서봤자 들러리밖에 안 된다”고 돌아섰다. 특히 청와대 발표 후 2시간도 안 돼 국회의장단마저 정기국회와 국제회의 참석 일정 등을 이유로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여당 출신인 데다 남북관계 개선을 누구보다 바라던 문희상 의장의 냉정한 거절이 청와대 입장에선 뼈아팠을 것 같다.

“함께 평양 가자”고 하니 “비핵화 완료되면”이라는 수년 내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차려준 밥상을 걷어차기만 하는 야당의 소갈머리도 칭찬할 수는 없다. 만약 청와대가 정상회담에 동행해달라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야당들이 청와대의 협치 부족을 질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이번 방북 초청에는 예의도, 전략도 없었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11일 뒤늦게 야당 대표들을 찾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 세심하고 적극적인 사전 동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날 밝힌 아쉬움처럼 입법부를 대하는 청와대의 정무 능력은 제로였다. 그게 아니라 야당을 압박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거절 당할 것을 알고도 발표했다면, 이는 ‘정치적 하수 중 하수’다. 청와대는 무소불위 조직이냐는 비판만 거세게 됐다. 임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며 다시 한 번 러브콜을 보냈지만 때는 늦었다.

국내의 초당적 지지, 국제사회의 뒷받침이 있어도 한 발 더 떼기 힘든 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과정이다. 반대를 일삼는 야당을 품는 것도 청와대의 능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문제는 유리그릇처럼 다루라”며 신중, 또 신중을 강조했다. 정치권 정상회담 동행 공개 초청이 신중한 결정이었는지, 또 한 번 정쟁을 유발한 것은 아닌지 임 실장은 다시 되돌아볼 일이다.

정상원 정치부 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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