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간염•이상지지혈증 등
드문 유형 탓 일반 치료효능 없는
‘언메트 메디컬 니즈’ 환자 대상
수요조차 정확히 파악 안 돼
신약 개발 리스크 부담 크지만
“미래가치 위해 도전”

국내 암 환자 사망원인 1위는 폐암이다. 폐암 치료 약이 수십 가지나 있는데, 좀처럼 사망률은 떨어지지 않는다. 폐암이라고 다 같은 폐암이 아니기 때문이다. 드문 유형에는 수십 가지 약도 소용이 없다. 약은 많은데 내게 맞는 약이 없을 때, 환자와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이미 치료제가 많이 나와 있지만, 그 치료제가 효능을 보이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환자들이 적지 않다. 제약업계가 바로 이런 환자들을 위해 나섰다. ‘언메트 메디칼 니즈(Unmet medical needsㆍ미충족 의료 수요)’라고 불리는 이런 환자들을 돕기 위해 기술력을 갖춘 국내외 제약사들이 나서고 있다.

최근 제약업계가 기존 약들이 듣지 않아 의료 혜택에서 소외돼 있던 환자들을 위한 '언메트 니즈' 신약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JW중외제약의 한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JW중외제약 제공

오는 24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제19회 세계폐암학회에선 한미약품이 미국 협력사 스펙트럼 파마수티칼과 함께 개발 중인 폐암 치료제 ‘포지오티닙’의 임상시험 결과가 공개된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국가암등록사업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폐암 발병 환자는 연간 약 2만5,000명. 그중 포지오티닙이 필요한 환자는 600~1,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은 특정 유전자(EGFR, HER2)의 특정 부위(exon20)에 돌연변이가 있어 기존 치료제가 잘 듣지 않는다. 폐암의 언메트 니즈 환자군인 이들에겐 지금까지 뾰족한 치료법이 없었다.

언메트 니즈 신약은 일반 신약보다 개발이 어렵다. 워낙 환자가 적어 표준 진단법도 확립돼 있지 않은 데다 후보물질을 다룰 때도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하고, 임상시험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때문에 신약 개발 경험이 많은 상위 제약사들이 주로 뛰어든다. 폐암 이외에도 급성골수성백혈병,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고인슐린증 등에서 언메트 니즈 신약을 발굴하고 있는 한미약품의 권세창 대표는 “기존 약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JW중외제약도 최근 언메트 니즈에 집중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이 지난달 다국적제약사 레오파마에 후보물질을 4억200만달러(약 4,500억원)어치 수출한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후보물질은 기존 약들이 해결하지 못한 가려움증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되고 있다. 이경준 JW중외제약 신약연구센터장은 “체내에서 기존 약들과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염증과 가려움증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유방암의 15~20%로 알려진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 역시 JW중외제약이 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언메트 니즈 신약이다. 기존 약들은 대부분 특정 단백질 3가지에 작용하는데, 삼중음성 유방암은 이들 단백질이 활동하지 않아 약이 별 효과가 없다.

한미약품의 한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한미약품 제공
사노피 아벤티스가 지난 6월 출시한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프랄런트'. 기존 약으로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을 위한 약이다. 사노피 아벤티스 제공
한국애브비가 11일 출시한 만성C형간염 치료제 '마비렛'. 드문 유형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에게도 쓸 수 있는 약이다. 한국애브비 제공

다국적제약사들은 한발 앞서 언메트 니즈 제품들을 국내에 출시했다. 올 6월 사노피 아벤티스가 내놓은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치료제 ‘프랄런트’가 대표적이다. 스타틴 성분이 들어 있는 기존 치료제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블록버스터’ 약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부 환자들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심해 스타틴을 쓰지 못한다. 프랄런트는 이런 환자들을 위해 개발됐다. 애브비가 11일 출시한 만성 C형간염 치료제 ‘마비렛’ 역시 언메트 니즈 신약이다. 기존 약들은 6가지 C형간염 바이러스 중 2가지에만 작용하는 데다 환자가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마비렛은 모든 유형의 C형간염에 쓸 수 있고, 단독 복용이 가능하다.

언메트 니즈 신약 개발은 리스크가 크다. 질병마다 드물게 발생하는 환자들이 대상이다 보니 수요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시장이 작은 만큼 기업으로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강자훈 한미약품 신약개발본부 상무는 “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진단법을 확립하거나 다른 질병으로 적용을 확대할 수 있다”며 “현재보다 미래 가치가 더 크다는 판단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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