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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확증편향과 외팔이 경제학자

입력
2018.09.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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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지난달 2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있다. 청장 재임 1년 만에 경질된 황 전총장은 이임사에서 "내가 윗선 말을 잘 듣진 않았다"고 밝혔다. 통계청 제공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지난달 2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있다. 청장 재임 1년 만에 경질된 황 전총장은 이임사에서 "내가 윗선 말을 잘 듣진 않았다"고 밝혔다. 통계청 제공

9일 일요일 밤, 잠을 부르려고 TV 앞에 앉아 채널을 옮겨 다니다 그만 잠이 달아나 버렸다. 같은 시간 지상파 채널 두 곳에서 같은 현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방송하고 있어서였다. 한 곳은 장사가 안돼 10년 넘게 운영하던 피자가게를 폐업하고 다른 피자가게 배달원이 된 이의 사연 등 자영업자 어려움을 인터뷰하며 그 원인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서 찾고 있었다. 다른 방송에서는 한 경제지의 ‘최저임금 자살 오보’에서 시작해, 통계 전문가와 기자가 나와 자영업 폐업률 개념의 문제점, 경제성장률 계산방법 등을 거론하며 일부 언론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자영업자 현실과 통계수치를 왜곡 과장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양 방송은 모두 팩트를 모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선명할수록 ‘자영업자 현 상황의 진실’은 흐릿해졌다.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진영은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하위 개념인 ‘최저임금 인상’과 등치 시킨 후 현재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현 정부 들어 진행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하라고 압박한다. 논리의 비약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돼버린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마치 직원 월급을 낮추면 해결될 것처럼 단순화된다.

이런 공격을 방어하는 정부와 그 우호진영도 자영업자의 어려움 해결은 최우선 고려대상이 아니다. 반대 측 공격의 허점을 지적하는데 몰두하는 사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 실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 수정 요구마저 변형된 공격으로 확대해석하며 점점 더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성장’이며 ‘소득주도’는 수단이라는 기초적 사실조차 잊어버린 게 아닌지 걱정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둘러싸고 찬반 양측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역설적으로 점점 서로 닮아가고 있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심리학 용어다.

지난달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서 지난해 동월보다 늘어난 취업자 수가 고작 5,000명에 그치자, 야당이 이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고용참사”라며 소득주도 성장을 당장 폐기하라고 공격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전문가들은 조선업과 한국GM 대량해고와 건설경기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보기 힘들다고 해석하지만 야당은 이를 외면했다. 직후 정부는 통계청장을 경질했는데, 신임 통계청장은 지난 5월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밝혔을 당시 그 근거 자료를 제출하는데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자다. 양측의 ‘확증편향’ 증상이 깊어지며, 경제정책에서 객관적 토론의 토대가 되는 통계마저 정치에 오염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실 20세기 중반만 해도 경제학은 ‘확증편향 결핍’의 학문이었던 모양이다. 1945~53년 재임했던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자문할 때마다 경제학자들이 “이 정책은 이런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이라며 그 정책의 부작용도 덧붙이는 바람에,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느냐”는 푸념을 했을 정도다. 한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외팔이’가 아니면, 정책에 참여할 수 없는 풍토가 강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풀려면 우선 정부가 가시적 성과에 대한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50년 이상 지속된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장기 목표라는 점을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또 이런 정책 초기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솔직히 밝히고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해야 한다. 추진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은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낮춰야 한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이나 특정 업무의 경우 52시간제 특례업종 확대 등이 그것이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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