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등 해양자원 공유 협의
WSJ “시진핑, 두테르테와 합의”
2016년 영유권 분쟁에선 졌지만
무력시위로 필리핀에 협상 강요
미국은 우방국 위기에 뒷짐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베이징=신화통신 연합뉴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압박이 통했다. 2년 전 영유권 분쟁에서는 밀렸지만, 필리핀의 손을 비틀어 해양 자원을 확보하는 실리를 챙길 전망이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외치며 뒷짐만 지는 사이 화약고나 다름 없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장악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중국과 필리핀이 분쟁수역인 남중국해에서 원유, 천연가스를 공유하는 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며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요한 합의에 이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국은 11월로 예상되는 시 주석의 필리핀 방문에 맞춰 공동 자원탐사를 포함, 남중국해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실무협의를 진행 중이다.

최대 관심은 필리핀 해안에서 85해리(약 157㎞) 떨어진 리드뱅크 해역이다. 남중국해 천연가스의 20% 가량 매장된 자원의 보고다. 지리적으로는 필리핀에 근접해 있지만 중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해상경계선인 남해구단선에 포함시켜 영유권을 주장해온 곳이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을 부정하고 필리핀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이 몽니를 부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일 순시선을 띄우고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며 필리핀 선박의 접근을 원천 차단했다. 인근 해역 인공섬은 미사일을 배치한 요새로 만들었다. 강대국의 무력시위 앞에 PCA 판결은 무용지물이었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시진핑 같은 거인 앞에서 판결문을 흔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중국과 협상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도 중국 편이다. 필리핀 본섬인 루존 전력량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말람파야 가스전이 2024년이면 바닥을 드러낸다. 따라서 리드뱅크를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서둘러 개발해야 하는데 중국이 옥죄고 있으니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은 동시에 수십억 달러를 필리핀의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당근을 제공해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있다.

반면 2014년 필리핀과 방위협력강화협정을 맺은 미국은 중국의 압박에도 우방국을 향해 미지근한 반응이다. 이에 필리핀의 정치인, 관료, 전문가들은 “중국 압력에 맞서 미국이 약속한 구체적 군사행동이 뭐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알랜 피터 카예타노 외교장관은 “중국과의 협력은 영유권과 별개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중국의 무차별 공세 앞에 필리핀은 좀체 맥을 못 추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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