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유해용 전 대법 연구관
‘재판거래 의혹’ 포함 수만건 유출
법원서 세 차례 기각하는 사이
컴퓨터 저장장치까지 분해
윤석열 “증거 인멸 엄중 책임”
검찰ㆍ법원 간 긴장감 고조

대법원 기밀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대법원 고위 관계자가 자신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는 틈을 타 자료를 파쇄한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법원ㆍ검찰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0일 검찰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원 재판 기밀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이 최근 자신에 대한 검찰의 잇단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본인이 대법원 근무 시 가지고 나온 이 자료들을 파쇄하고, 컴퓨터 저장장치도 분해해 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유 전 수석연구관에게 ‘대법원에서 근무할 때 취득한 자료 등의 목록을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는지’ 등을 문의하자 이런 취지의 답이 돌아왔고, 서울중앙지검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경위를 전달 받은 검찰은 이례적으로 윤석열 지검장이 나서 증거인멸 행위로 규정하고, 관련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거론하면서 격앙된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름을 걸고 총력 수사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어 향후 검찰의 수사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법원이 유 전 수석연구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세 차례나 기각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사유를 들어 검찰은 거듭 불만을 표시해온 터다. 윤 지검장 발언은 증거인멸 행위는 물론 조력자에 대해서도 샅샅이 수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기밀 자료와 저장장치 파쇄가 알려지기 직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7일 세 번째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이날 또 기각되자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판사는 기각 사유로 “대법원 재판자료를 반출, 소지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유 전 수석연구관이 소지한 자료를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압수수색 결과에 따라 다양한 혐의 적용이 가능한 것인데 무슨 근거로 죄가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이 대법원에서 무단 반출한 자료는 통진당 소송 개입과 일제 징용 소송 개입, 전교조 소송 개입,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인 김영채ㆍ박채윤 부부 특허소송 개입 등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및 협력과 관련한 내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유 전 수석재판관이 재직 중 김모 당시 선임재판연구관(현 수석연구관)으로부터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정황이 담긴 문건을 전달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문건은 2016년 6월 8일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에 관한 의견(대외비)’으로, 2014년 헌법재판소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의원직 복직을 청구한 행정소송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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