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기 맞아 첫 화물선 시험 운항
기존 수에즈 운하보다 경로 짧아
북극해 연안 국가에 수혜 가능성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항구에 정박해 있는 컨테이너선 벤타 머스크호의 북극 항로 시험 항해를 앞두고 냉동 생선이 적재되는 장면을 한 남성이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주 러시아 시베리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협. 북극 주변 지역치고는 비교적 맑은 하늘과 상대적으로 높은 기온을 보였던 이곳을 한 컨테이너선이 지나고 있었다. 세계 1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사(社)의 중형 컨테이너선 ‘벤타 머스크’호 얘기다. 작은 규모의 유조선이나 화물선, 연구용 선박 등이 북극해를 거쳐간 적은 있었지만, 화물을 잔뜩 실은 컨테이너선이 북극 항로 항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 닷새 후 한국 부산항에서 정보기술(IT) 화물을 실은 뒤 북쪽으로 향한 벤타 머스크호의 목적지는 독일 브레메르하벤항, 그리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항이다. 지금까지 한국ㆍ일본의 화물을 유럽으로 보내려면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를 택했겠지만, 북극 빙하가 녹는 해빙기(7~10월)를 맞아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한 시험 운항에 나선 것이다. 때문에 전 세계 해운업계는 물론, 주요 언론들도 이 배의 탐험적 항해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이 항로를 ‘러시아판 수에즈 운하’에 비유하며 분석 기사를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WP 보도에 따르면 북극 항로의 최대 장점은 역시 ‘시간 단축’이다. 벤타 머스크호의 경우 부산에서 독일 브레메르하벤까지 총 23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수에즈 운하(34일)를 이용하거나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46일)을 둘러갈 때보다 열흘에서 거의 한달 가량 짧다.

북극 항로가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북극바다를 뒤덮었던 빙하가 지구온난화 진전에 따라 줄어들면서, 여름철에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항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콜로라도주 국립 눈얼음데이터센터의 수석연구원 월트 메이어는 “기후변화 모델을 보면 2050~2070년쯤에는 여름 북극해에서 얼음이 사라질 것”이라며 ”그 시기를 2030년으로 앞당겨 예측하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론자 대다수가 인류의 재앙이라고 여기는 일이, 북극해 연안 국가 특히 러시아에는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역설적’ 효과도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북극 항로의 본격 활용까진 갈 길이 멀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스크사도 이번 벤타 머스크호와 관련, “과학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하기 위한 일회성 운항”이라며 현재로선 ‘시험 단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빙하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의 국책연구기관인 프리마코프 세계경제ㆍ국제관계연구소의 북극 전문가인 안드레이 토도로프는 “얼음이 사라져도 상업용 선박의 운항이 더 쉬워지는 게 아니다”라며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과 충돌하게 될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북극해의 군사적 대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러시아와 덴마크, 캐나다, 노르웨이, 미국 등 북극 주변 국가들이 항로와 관련한 자국 권리를 내세움으로써 일종의 ‘분쟁 지대’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WP는 “북극 항로 지역이 ‘지구촌의 공유지’가 될지, 분쟁의 도화선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로런스 스미스 지리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북극 항로는 ‘틈새 시장’이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얼음이 아무런 제약 요소가 아니게 될 경우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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