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품귀 현상 등 직격탄
기저귀 한 묶음 가격 2배로 껑충
이란 정부, 미국 제재 우회 목적으로
프랑스 등 파산 기업 인수 나서기도

미국의 대 이란 경제 제재 재개로 이란 리알화 가치가 폭락한 가운데, 이란 사람들이 지난 5일 테헤란 시내의 환전소 앞에 미국 달러와 유로를 사기 위해 줄 서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12일 BBC에 따르면 이란 호라산주 마슈하드에 사는 알리는 최근 둘째 아이를 낳을 계획을 포기했다.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재개 이후, 기저귀 값이 폭등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란 화폐인 리알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 기저귀 한 묶음 가격은 4월말 38만리알(약 1만원)에서 지난달 말에는 85만리알(약 2만3,000원)로 뛰었다. 알리는 BBC에 “지금으로서는 애 하나 잘 기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는 결혼을 앞둔 이란의 예비 부부에게도 타격을 줬다. 테헤란에 사는 사드자드는 AP통신에서 “통장에 있는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사야 할 물품 가격은 날마다 치솟고 있다”며 침울해했다.

지난달 초 미국이 이란 정부와의 외환 거래, 귀금속 거래, 자동차ㆍ비행기 부문 수출 등을 금지ㆍ제한하고 나서면서 이란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제재 여파로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거나 생필품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애꿎은 이란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란 정부가 독자 생존을 위해 유럽 기업에 투자하는 등 미국의 제재를 피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당초 예고대로 11월 미국이 추가 제재를 부과할 경우 상황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각해지자, 이란 정부는 미국 제재를 피해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확보하는 대체 경로 확보에 혈안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이란해외투자공사(IFIC)의 최근 프랑스 파산기업 인수는 그 대표사례다. IFIC는 파산한 프랑스 제약회사에 300만달러(약 33억8,000만원)를 투자키로 했는데, 미국 제재로 구하기 어려워진 폐결핵, 방광암 치료제 등을 우회 조달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WSJ은 “IFIC는 22개국에 50억달러 규모의 현금과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제재를 피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고 전했다.

폭등하는 이란 리알의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

그러나 이런 시도는 미국의 촘촘한 제재망 때문에 효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IFIC는 최근 보유 중인 독일 기술업체 티센크루프 지분 4.1%를 매각해 현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막판에 취소했다. 미국 달러가 개입되는 국제 거래에는 모두 관여할 수 있다며 미국이 소송을 통해 지분 매각 자금을 압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11월부터 이란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하는 추가 제재를 가할 예정이어서 이란 서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 강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터키 등이 이란산 원유를 계속해서 사들이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겠지만, 핵심 외화수입원이 단절되면 이란 경제는 자칫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BBC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석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는데, 이 경우 이란 화폐 가치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라며 “기저귀 대란은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두 번째 미국의 제재는 이란의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다”며 “2019년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은 3.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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