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중인 가수 현아(왼쪽)와 이던은 혼성그룹 트리플 H로도 활동했다. 현아 사회관계망서비스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정동길 인근 이탈리안 레스토랑. 문을 열자마자 눈에 띈 건 한 청년이었다. 순정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미모에 웃음으로 반달이 된 선한 눈. 딱 한 자리 비어있던, 청년 옆의 테이블로 가다 호기심에 그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니 연예인이었다. 시청률 40%를 웃돈 드라마에 나와 주가를 높인 20대 배우였다. 그의 앞엔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불타는 금요일 저녁, 촉망 받는 청춘 배우의 일반인 여성과 둘만의 만남이라니. 열애설이라도 불거질까 노심초사하는 소속사 대표의 모습이 떠오르며 장난기가 돌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배우의 소속사 대표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ㅇㅇㅇ, 어떤 여성 분과 단둘이 식사 중이네요 ㅋㅋㅋ’. 메시지를 보내고 10여 분이 흘렀을까. 예상외로 침착했던 대표의 반응과 달리 배우가 테이블로 찾아왔다. “대표님이 그렇게 메시지를 쏟아내는 분이 아닌데...” 그는 먼저 “(가게) 옆 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닌다”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저녁을 먹은 여성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지인이라고 했다.

묻지 않았지만 의심받는 걸 눈치 챈 이의 부드러운 선제 공격(?)이었다. 배우와의 어색한 대화를 끝내자 내 일행이 결국 한 소리를 했다. “아이고, 그냥 모른 체하지. 저 사람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난 거 아냐?” 그렇게 혀를 차던 일부 언론의 관음증처럼 누군가의 자유로운 만남을 구속한 건 아닐까. 속물이 된 기분이었다.

사랑의 선포는 누군가에겐 어렵고 처절하다. 아이돌그룹 포미닛 출신 현아와 또 다른 그룹 펜타콘 멤버인 이던은 최근 연예계를 들썩인 ‘슬픈 만남’의 주인공들이다. 현아와 이던의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큐브)는 지난달 두 사람의 열애설을 부인했다. 그러자 현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솔직해지고 싶었다”며 소속사의 입장을 뒤집고 이던과의 교제를 인정해 파장이 일었다. 현아가 직접 나서자 큐브는 보도자료를 내 “아티스트와 커뮤니케이션 오류”라고 입장을 번복했지만, 궁색한 해명은 반감만 키웠다. 소속 아티스트 의사와 상관없이 입장을 낸 촌극을 인정한 꼴이 돼 버려서다.

가요기획사들은 여성보다 남성 아이돌의 열애설에 더 몸을 사리곤 한다. 열애설이 터지면 여성 팬덤 중심인 남성 아이돌그룹에 큰 타격을 준다고 믿어서다. 이 상업적 논리에 따라 남녀 아이돌의 열애설이 터지면 대부분이 남성 혹은 그가 속한 팀을 보호하는 쪽으로 전략이 짜인다. 결국 여성 아이돌의 목소리는 소외된다. 현아와 이던의 교제설 번복 해프닝을 두고 ‘큐브가 펜타콘 보호를 위해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무시하려 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아와 이던은 교제를 인정한 뒤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펜타콘은 오는 10일 새 앨범 ‘썸스 업’을 내지만 이던은 활동하지 못한다. 큐브는 ‘내부사정’을 이유로 이던의 잠정 활동 중단을 알렸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활동 중단이라니. 소속사가 항명을 이유로 두 가수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큰 거짓말을 하기보다 솔직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연예 활동에 발이 묶인 이던이 지난 7일 팬카페에 올린 글은 그래서 절규에 가깝다. ‘사내연애’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무대에 서지 못하는 21세기 K팝의 일그러진 풍경이다.

요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연애한다고 그의 음악을 과연 듣지 않을까. 성숙한 팬덤을 따라가지 못하는 큐브의 행보는 시대착오적이다. ‘데뷔 후 전속 계약 기간(7년) 동안 연애 금지’는 공공연한 비밀을 넘어 K팝 산업의 일상이 됐다. 화려한 춤과 세련된 멜로디 뒤에 숨은 K팝의 반인권적 토대는 기괴함을 넘어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가 아닐까. 취업난으로 연애를 포기하는 ‘88만원 세대’처럼 연애의 빈곤이 구조적 문제가 된 시대엔 더더욱.

양승준 문화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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