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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의 와이드엔터] 한물 간 섹스심벌의 부활과 사망…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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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의 와이드엔터] 한물 간 섹스심벌의 부활과 사망…우리는?

입력
2018.09.1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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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레이놀즈(가운데)가 재기작 ‘부기 나이트’에서 마크 월버그(맨 오른쪽)와 공연중이다.
버트 레이놀즈(가운데)가 재기작 ‘부기 나이트’에서 마크 월버그(맨 오른쪽)와 공연중이다.

▶ 지난 6일(현지시간) 버트 레이놀즈가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요즘 20~30대들에겐 ‘누구지?’ 싶겠지만, 레이놀즈야말로 1970년대 전 세계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가장 미국적인 남성 ‘섹스 심벌’이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과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 수북한 콧수염와 가슴털이 그를 ‘테스토스테론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당시에도 한국 관객들은 레이놀즈에게 유독 시큰둥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터프한 섹시가이는 썩 선호하지 않는 국내 성향 탓일텐데, 그래서인지 국내에서 제대로 개봉되고 관객들이 들었던 그의 주연작은 ‘샤키 머신’과 ‘캐논볼’ 시리즈가 거의 전부다.

▶ 1970년대까지 ‘지구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를 독주하던 레이놀즈의 커리어는 1980년대로 접어들며 급격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제작과 주연을 겸했던 그저 그런 상업영화들로 남성적 매력을 과소비하면서부터다.

저명한 영화평론가 마크 엘리엇이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삶을 파헤친 평전 ‘클린트 이스트우드’에는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레이놀즈와 이스트우드에 얽힌 당시의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버트 레이놀즈(왼쪽)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연했던 ‘시티 히트’의 한 장면. IMDB 제공
버트 레이놀즈(왼쪽)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연했던 ‘시티 히트’의 한 장면. IMDB 제공

비슷한 연배(이스트우드는 올해 88세다)의 둘은 1950년대 후반 한 영화 오디션에서 나란히 물을 먹었던 걸 시작으로 겉으론 꽤 가깝게 지내는 라이벌이었다.

나이를 먹고 인기 내리막길을 타면서 불안해진 레이놀즈와 이스트우드는 1984년작 ‘시티 히트’의 투톱으로 만나 재기를 도모하는데, 레이놀즈가 왕년의 인기만 믿고 거들먹거리자 성질 고약한 이스트우드가 격투 장면 촬영을 빙자해 레이놀즈의 턱을 날려버려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

운명의 주먹질인가? 맞은 레이놀즈는 공교롭게도 턱 부상 이후 안 그래도 내리막길을 타던 인기가 더욱 곤두박질친 반면, 때린 이스트우드는 액션스타에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작가’로 변신했다.

▶ 그렇게 할리우드 변방으로 완전히 밀려난 줄 알았던 레이놀즈가 뒤늦게 연기파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1997년작 ‘부기 나이트’였다.

전설적인 포르노 스타 존 홈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자화상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파헤친 이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인 ‘대물(大物)’ 에디(마크 월버그)를 포르노 업계로 입문시키는 포르노 감독 잭 호너 역을 맡아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고 평생 거리가 멀 듯 싶었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한 레이놀즈는 타계 직전까지 할리우드에서 ‘재발견의 훌륭한 사례’로 언급되곤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섹스 심벌 이미지에 가려있던 그의 출중한 연기력을 눈치 챈 ‘부기 나이트’의 연출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감식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돌이켜 보면 우리 영화계에도 ‘버트 레이놀즈’가 꽤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아예 영화계를 떠나 이름을 언급하긴 힘들지만, 남성적 매력을 무기로 스크린을 무대삼아 활발히 활동하던 남자 배우들이 실은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1970~1990년대 초반 범람했던 호스티스 멜로물과 토속 에로물을 통해 나름 높은 지명도를 누렸는데,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충무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해 지금은 영화팬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 중 몇몇은 연극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닦아 연기파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음에도, ‘제 살 깎아먹기’ 식의 호구지책으로 수준 낮은 특정 장르의 영화에 계속 출연하면서 능력 한 번 발휘하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졌다.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로 변희봉을, 장준환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로 백윤식을 각각 재발견했던 것처럼 능력있는 연출자가 그 시절 ‘충무로의 버트 레이놀즈’들을 화려하게 되살려주면 어떨까.

배우 당사자에겐 ‘제2의 연기 인생’을, 관객들에겐 ‘새로운 얼굴의 발견’ 혹은 ‘왠지 익숙한 얼굴의 변신’이란 즐거움을 각각 제공하는 1석2조의 효과가 기대된다. 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조연 기근’ 현상도 해소할 수 있지 않겠나..

레이놀즈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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