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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994 메이저리그 파업(9.14)

입력
2018.09.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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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에 성난 미 프로야구 팬들의 시위. troyhistoricvillage.org
1994년 메이저리그 파업에 성난 미 프로야구 팬들의 시위. troyhistoricvillage.org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시즌 중 파업은 1885년 선수 노조가 설립된 이래 1972년(4.1~4.13)부터 4차례 있었다. 그중 1994년 파업이 8월 12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232일 최장 파업으로 이어졌다.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가 무산된 것도 처음이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버드 셀리그(Bud Seligㆍ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는 9월 14일 월드시리즈를 포함, 시즌 잔여 경기의 전면 취소를 발표했다. 협상 타결을 기대하던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샐러리 캡(Salary Cap)이 핵심 쟁점이었다. 구단주들은 팀별 선수 연봉 총액을 일정 금액 이상 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명분은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팀의 스카우트 핸디캡을 완화하고 팀별 기량을 고르게 해서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자는 거였다. 하지만 연봉 협상에서 구단 측이 우위를 점하려는 분리 통치(divide and rule) 즉 선수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려는 의도도 있어 1985년에도 도입하려다 선수 파업으로 이틀(8.6~7)만에 봉합된 전례가 있었다. 셀리그의 선언은 구단 손실 5억8,000만달러, 선수 연봉 손실 2억3,000만달러를 의미했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까지 합의를 촉구하는 등 중재에 나선 끝에 파업은 선수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995년 시즌을 마이너리그 선수들로 대체해 개막하려던 구단들의 시도가 연방지방법원의 사전 금지 판결로 무산된 결과였다. 1995년 시즌은 정규 경기(162경기)보다 18게임이 적은 144경기로 치러졌다.

1994년 시즌의 장기 파업으로 선수와 구단의 희비도 엇갈렸다. 4할 타율에 도전하던 토니 그윈의 꿈이 무산됐고, 매트 윌리엄스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도 물거품이 됐다. 부활을 꿈꾸며 양대 리그 승률 1위(74승 40패) 행진을 이어가던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추락했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고대하던 시카고 불스의 전설 마이클 조던은 이듬해 농구 코트로 복귀했다. ‘2008 명예의 전당’의 우완 투수 리처드 마이클 고시지(119951~)는 1972년 메이저리거(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발탁됐지만 파업 때문에 시카고에 오자마자 오갈 데가 없어 밤새 길거리를 쏘다녀야 했다고 한다. 그는 1994년 파업 와중이던 8월 8일, 공식 행사나 은퇴 선언도 없이 리그를 떠났다. 그는 “내가 메이저리그를 떠난 게 아니라 메이저리그가 나를 떠났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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