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인 전 국제라이온스협회356-A지구 총재

지역 최대 규모의 봉사단체, ‘봉사의 대명사’ 국제라이온스협회356-A지구 총재직을 1년간 수행하고 최근 이임한 김홍인(55) 전 총재, 그는 ‘재임 중 봉사에 새로운 하나를 더한 총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봉사의 만족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임기 동안 모든 회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스스로 만족을 넓혀가는 봉사를 실천했다. 그 결과 유례없는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임기 동안 137명의 회원을 순증가시켰다. 시민 사회로부터는 “지속적이면서 만족감을 키우는 봉사로 클럽의 위상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김 전 총재의 소회는 담담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정말 모든 걸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미진한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다양한 구성원이 속한 거대 단체를 이끈 만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웠고 그 과정에서 정신의 키가 한 자는 자란 느낌입니다.”

김 전 총재는 2005년 대구달서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한 이후 올곧은 봉사정신과 지속적이면서도 열정적인 활동으로 일찌감치 차세대 리더로 주목을 받았다. 2010년 대구달서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국제라이온스협회356-A 산악회장으로 발탁됐고, 국제라이온스협회356-A 지구 제1·2총재를 거쳐 높은 지지율로 총재에 당선됐다. 그는 임기 중에 치열한 봉사와 헌신적인 회원 관리로 122개 클럽 4,733명의 회원을 구축했고 라이온스클럽국제재단(LCIF)기금 2만1천달러와 장학기금 3천700여만원을 기탁했다. 또한 활발한 해외 봉사의 공로로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는가 하면, 해외우물파기 봉사활동과 회관증축기금 모으기에도 크게 기여하는 등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가는 ‘참된 봉사’

김 전 총재의 모토는 ‘찾아가는 봉사, 함께하는 봉사’였다.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발로 뛰어 찾고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대강 대강 폼만 잡다가는 애만 쓰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무료합동결혼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애인,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가정 20쌍을 찾아내 결혼식을 올려줬다. 합동김장봉사로 취약계층에 1만포기의 김치를 제공하고, 연탄과 꼭 필요한 월동장구 나눔 행사도 펼쳤다. 폭염과 한파 등 이상기후로 고생하는 이들까지 알뜰하게 살폈고, 지진이나 수해, 화재 등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경제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포괄적인 ‘시민’을 위한 봉사 실천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용 때문에 차량을 구입하지 못하는 지자체와 복지단체 등에 ‘레이’ 8대를 구매해서 각 구청에 기증했다. 차량은 장애인 및 노약자들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개조작업을 거쳤다. 가장 보편적인 봉사활동인 무료급식도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대구장애인복지관내에서 연간 2만5천여명의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큰일이 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이른바 시민과 함께하는 봉사의 일환이었다. 이 경우 1개 클럽에서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합동봉사를 적극 권장했다. 힘을 모아야하는 봉사활동에는 합동김장을 비롯해 농촌일손돕기, 다문화 및 새터민 가정 자원봉사와 경로잔치를 비롯해 치맥페스티벌 동참도 있었다. 김 전 총재는 지역부총재들과 의견조율을 통해 활발하게 합동봉사를 하도록 권하고 유도했다.

방황하는 젊은 친구들에 각별한 애정 쏟는 이유

김 전 총재는 성주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살다가 대구로 나와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직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대학은 뒤늦게 졸업했다. 그는 가장 잘 한 일중의 하나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특히 소년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틈틈이 후원한 일들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을 안다잖아요. 가난과 공부에 대한 갈망, 마음대로 되는 일이 단 1도 없는 것 같은 청년기의 방황 따위가 주위를 돌아보게 한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가 ‘젊은이는 품어주고 싶다’고 했는데, 저 역시 저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는 친구들을 품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갖은 고생과 뼈저린 실패의 경험들을 안고, 대구3산단에 있는 공성기계에서 현장노동자로 시작했다. 공단에서 ‘쇳밥’을 먹으면서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익힌 뒤 IMF때 <주>승진기계를 설립했다. 부도가 난 ‘승진산업’을 인수해 세운 회사였다. 성공가도의 시작이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되자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픈 경험들이 동력이었다.

김 전 총재는 국내봉사와 더불어 해외 봉사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캄보디아 프레이뽀운 중고등학교가 주 봉사무대였다. 학교시설을 고치고 증축해서 지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발돋움시켰다. 학교를 재정비하는 사업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 우물 파기 사업도 전개했다. 캄보디아 봉사도 젊은 친구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근본적인 동력이었다. 진심어린 봉사로 김 총재는 대구지구와 함께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캄보디아 사람들과의 끈끈한 연대를 증명한 수상이었다.

“훈장도 좋지만 훈장보다 더 뿌듯한 일이 있습니다. 현재 프레이뽀운 중고등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습니다. 우리 대구지구가 국위선양을 톡톡히 한 것 같아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1+1은 2가 아니라 1이 되어야 하는 것이 봉사

김 전 총재가 라이온을 이끌며 가장 애쓰고 신경 쓴 부분은 화합과 협동이었다. 그는 이를 ‘1+1=1’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했다. 다 함께 하나가 되어 봉사할 때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총재는 외롭다는 경험을 자주 했습니다. 회원들을 설득하고 다함께 동참하도록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때때로 누구에게 내 맘을 알려 싶은 생각이 들었죠.”

선배들의 과도한 간섭이 문제가 될 때도 많았다. 그는 “선배들이 현 총재가 펼치고 있는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흥을 깨버리는 사례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내가 선배로서 많은 경험을 했으니 현 회장은 나의 경험에 귀 기울어야 한다는 식의 말과 행동은 봉사에 대한 창의성을 없애고 리더의 기를 꺾는 행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선배들이 현 회장의 리더십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면 회장은 갈등과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전이든 전이든 집행부가 일을 할 때 아낌없는 후원과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라고 했듯 회장을 묵묵히 지지해 주고 응원해주는 전관이 많을수록 그 클럽은 더욱 발전하고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당뇨병 퇴치 및 환경정화 활동 모습.

봉사도 결국 ‘티끌 모아 태산’, 동참이 제일 중요

오랜 세월 봉사를 해오면서 모임을 튼튼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념과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김 전 총재는 “선후배를 비롯해 동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탈퇴를 한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참된 봉사자라고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아무리 좋은 단체라 하더라도 사람이 모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고 해서 모임에서 돌아서는 것은 진정한 봉사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참고 견디는 것도 회원의 의무일 것입니다. 처음 뜻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참된 봉사의 길입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라이온의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회원 스스로가 봉사에 대한 자부심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뜻이 참되고 올바르다면 언젠가는 마음먹은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라이온으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적극적인 참여였다. 아무리 봉사 규모가 크고 멋있는 일이라고 해도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도 참여에 대한 당부로 갈무리를 했다.

“‘티끌 모아 태산’라고 했습니다. 작지만 하나하나 모이면 태산이 되듯, 라이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큰 봉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회기 동안 많은 태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라이온이 함께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주력한 부분도 사업 실행 유무를 결정하고 회원을 설득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임기 동안에는 다들 열심히 뛰는 분위기였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총재 재임기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 라이온의 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홍인 전 국제라이온스협회356-A지구 총재

김혁동기자 allyes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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