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낸 손보미 작가

“오래 집중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소설 쓰기예요
비유ㆍ미사여구 많은 문장은
설명에 방해가 돼 피하는 편”
소설가 손보미. 김혜윤 인턴기자

소설가로 데뷔하고 한동안 ‘재능 있는’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요즘은 ‘우아한’이다. 손보미(38) 작가 얘기다. 그의 소설을 설명하는 우아함은 ‘간결하고 정확한 아름다움’이다. 그가 짓는 이야기는 활달하게, 때로는 도도하게 직진한다. 그는 글을 치장하고 의미를 숨겨 두는 데 관심이 없다. 그저 이야기면 된다는 듯이.

손 작가가 두 번째 단편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이제 대놓고 우아하기로 한 걸까.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나 물었다.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요.

“출판사 편집자가요(웃음). 처음엔 어울리겠나 했어요. 제 소설은 귀엽지 않으니까요. 책이 나오고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소설에 밤 배경이랑 ‘우아하다’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는 걸 편집자 얘기 듣고 알았어요.”

-우아한 소설이란 뭘까요. 스스로 우아한 문장을 쓴다고 생각하나요.

“우아하다는 건 전부 다 말하지 않는 거예요. 음흉하다, 신비롭다, 두렵다는 것과 닿아 있어요. 제가 쓰는 것들이 우아하기를 바라요. 그 인물은 왜 그랬지? 왜 그런 말을 했지? 다 읽고 계속 그렇게 질문하게 하는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모든 걸 말해 준 것 같은데 어쩐지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 소설요.”

-비유가 드문 문장은 여전하네요.

“사실 비유를 잘 못해서 안 하는 거예요(웃음). 소설은 자기 안에 있는 세계를 표현하는 거예요. 비유는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고요. 저는 비유, 미사여구 같은 게 많은 문장이 뭔가를 설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믿는 쪽이에요. 대신 그 뭔가를 지칭하는 말을 분명하게 쓰려고 해요. 나무를 묘사할 때 나무 색을 가리키는 이름을 찾아 보는 식이죠. 답답할 때도 있지만, 잘 못하니까 그냥 넘겨야죠.”

단편 9편이 실린 책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고양이다. 첫 번째 수록작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은 전 애인 집을 점령한 고양이들을 처리하러 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마지막 수록작 ‘고양이의 보은-눈물의 씨앗’에선 애꾸눈 고양이가 딴 세계에서 보낸 초대장이 불쑥 도착한다. ‘죽은 사람(들)’에선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상자 사나이’에선 5년 전 헤어진 애인이 찾아 온다. 고양이든, 사람이든, 불행이든, 사랑이든, 쉼 없이 침입하는 게 삶이긴 하다. 손 작가가 지은 세계에선 그 침입이 삶을 뒤엎지 않는다. 삶은 그냥 흘러간다.

-‘인간 손보미’의 삶도 그렇게 흘러 왔나요. 인생 최대의 도발은 뭔가요.

“고 3때 교복 입고 홍대 앞 클럽에 놀러 다닌 거요. 잠실 살았는데 홍대에 매일 다니느라 성적이 확 떨어졌어요. 어머니(조연향 시인)가 아직 모르시는데(웃음)… 제가 지나치게 평탄하게 살긴 했어요. 줏대도 없었고요. 그래서 소설가의 삶으론 좀 부족하지 않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 손 작가의 집엔 책이 많았다. 그는 책보다 ‘글자’ 읽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경희대 국문학과에 들어가 문학동아리에 들었다. 99학번인 그가 생애 첫 소설을 쓴 건 1999년 여름이었다. 재밌어하며 썼는데 친구들 반응은 그저 그랬다. 소설가가 꿈도 아니었고, 차라리 드라마 써 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다 소설 쓰니까, 또 줏대 없이” 계속 썼다. 2009년 데뷔해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2013), 장편 ‘디어 랄프로렌’(2017)을 냈고,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큰 상들을 받았다.

-그간 쉼 없이 쓴 편이죠.

“쓸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요. 쓸수록 문장이 더 좋아질 것 같아서요. 요즘은 과연 그런가 싶어요. 데뷔하고 독자를 너무 많이 의식한 것 같아요. 데뷔 전처럼 ‘내가 쓰고 싶은 걸 솔직하게 쓰기’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저는 소설을 계속 쓸 사람이니까요. 오래 집중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소설 쓰기예요. 하루에 쓸 만큼을 쓰고 나서 ‘내일 또 써야지, 또 쓰고 싶다’고 기대될 때가 있어요.”

-일부 문단 원로들이 젊은 작가들이 장편을 못 쓴다고 걱정하는데요.

“정말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예술성을 따지면 단편이 훨씬 예술적인 장르 아닌가요? 단편은 시와 가깝다고 하잖아요. 소설가들이 화내실까요(웃음)? 이야기만 충분히 준비돼 있으면 저는 장편 쓰는 게 더 자유로워서 재밌던데요. 다음달에 장편 연재 들어갈 거예요. 이야기 구상을 못해서 요즘 굉장히 초초하게 보내고 있어요(웃음).”

수록작 ‘임시교사’의 주인공 P부인은 손 작가가 “꼭 한 번 써 보고 싶었던 여성상”이었다. P부인은 평생 ‘임시’ 꼬리표를 떼지 못한 전직 교사다. 그를 보모로 고용한 젊은 부부에게 “생각해 보면 참 불쌍한 여자야”라는 말이나 듣는 처지이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사는 건 그런 거지”라는 말을 붙잡고 살아서다. ‘소설은 그런 거지.’ 손 작가는 그 말을 붙잡고 쓰는 듯 보였다. 작가로서의 당당한 우아함이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슬아 인턴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