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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대로 했다지만… 감염 환자 발열 없다고 ‘입국장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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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대로 했다지만… 감염 환자 발열 없다고 ‘입국장 통과’

입력
2018.09.09 19:30
수정
2018.09.10 07:4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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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서 휠체어로 입국한 60대

설사 증세 밝혔지만 의심 안해

현지 의료기관 방문도 포착 못해

환자 자체 판단에 과도한 의존

전문가 “검역 매뉴얼 강화해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3년여만에 발생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환자 A씨가 격리 치료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동을 방문한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3년여만에 발생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환자 A씨가 격리 치료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동을 방문한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ㆍ검역당국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 확진 환자 A(61)씨가 아무런 제지 없이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해외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준수했다”고 강조한다. 실제 공항은 물론 이후 A씨가 거쳐간 병원 등에서도 매뉴얼은 충분히 지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멍은 매뉴얼 자체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국 불과 5시간 만에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된 상황에서 검역을 그냥 통과했다면 매뉴얼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9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2018 검역업무지침’에 따르면, 공항 검역관들은 해외감염병 오염지역을 다녀 온 방문객에겐 발열감시와 건강상태질문서 작성 요청을, 비오염지역 방문자에겐 발열감시를 실시한다. 다만 비오염지역 방문객이라도 경유지가 있다고 자진 신고하거나 발열 등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대상으로는 건강상태질문서를 쓰게 한다. 질문지에는 설사와 구토, 발열, 기침, 호흡곤란 등 증상을 ‘과거 21일 동안 혹은 현재 겪고 있는지’를 체크하게 된다. 방문객들은 질문서를 작성한 뒤 검역관에게 제출하고 검역심사대에서 1대 1로 체온을 잰다. 만약 37.5도 이상의 체온을 보이면 공항 내에서 격리되거나 국가지정 격리병상이 있는 병원으로 이송된다.

메르스 확진을 받은 A씨 역시 이 같은 매뉴얼을 모두 거쳤다. 쿠웨이트는 메르스 발병이 드물어 비오염지역으로 분류돼 있지만, A씨가 두바이를 경유했고 입국 당시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질문서와 발열감시를 모두 받았다는 게 질본의 설명이다. A씨는 질문서에 ‘열흘 전쯤 6회에 걸쳐 설사 증세를 앓았고, 근육통이 조금 있다’고 적었지만 검역관의 추가 물음에는 “현재는 괜찮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체온 측정도 36.3도로 정상 수치를 기록해 따로 의심환자로 분류되지 않고 검역 통과가 가능했다.

하지만 스스로 대형병원을 찾은 A씨가 메르스 확진 판정까지 받게 되자 보건당국의 매뉴얼 자체에 구멍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A씨가 스스로 휠체어를 요청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검역장을 통과시킨 점이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박기준 질본 검역지원과장은 “A씨가 다른 증상은 없이 열흘 간 설사 등으로 기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휠체어를 빌린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중동국가 방문력이 있는 데다 감염력이 약한 60대인 점 등을 미뤄볼 때 보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입국 단계에서 고열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격리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A씨의 쿠웨이트 현지 의료기관 방문 이력을 검역 단계에서 정확히 잡아내지 못한 점도 문제다. 메르스의 주요 발병 원인은 낙타 접촉이지만, 상당수는 의료기관에서 환자와의 접촉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질본은 중동 방문객들에게 최대한 현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A씨는 지난달 28일 설사가 멎지 않자 현지에서 의료기관을 방문했으나, 검역 단계에서는 “별다른 질병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 대답 외에는 검역장에서 마땅히 방문 이력을 확인할 수단도 없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키운 보건당국의 미숙한 초동대응과 비교해선 대처가 빨랐지만, 여전히 환자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매뉴얼의 허점이다. A씨가 만약 판단을 잘못해 곧장 병원을 찾지 않았다면 밀접ㆍ일상접촉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공산이 크다. 실제 2015년 메르스 확진을 받은 첫 환자 B(당시 68세)씨는 바레인에서 입국한 지 16일 만인 5월20일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병원 4곳을 전전하며 환자들과 의료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특히 올해 들어 이달 8일까지 중동지역에서 총 116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에서 30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미뤄 볼 때, 메르스 환자 국내 유입은 언제든 가능했는데도 1차 관문인 공항에서 감시체계가 느슨했다는 점은 비판을 키운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출입국 검열 매뉴얼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출입국 매뉴얼을 보완해 중동지역에 다녀온 사람, 특히 감염력이 떨어진 60대 이상 연령층은 설사가 지속되거나 감기증상이 있으면 우선 격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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